어제 왔던 손님이 친정엄마 손잡고 다시 찾는 싱싱한 시장

우현수산물 박정숙 사장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정이 있어야지, 시장이니까...”

시장생활 16년째, 어려울 때 의지 되어준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공동체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었다는 것. 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지난 2012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들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시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목사고을시장 우현수산물 박정숙 사장
산낙지가 보약?

“진짜 산낙지를 먹이면 쓰러진 소가 벌떡 일어나요?”
“아까운 산낙지를 뭐 할라고 소한테 먹여? 나 묵을 것도 없는디...”

나주 목사고을시장 매일동에 자리 잡은 우현수산물 박정숙(54·나주시 경현동)사장의 얘기다.
예로부터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산낙지의 효능에 대해 물어 본 것인데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주인장의 대답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취재를 가기 전 나주목사고을시장 공식카페(http://cafe.daum.net/najumarket)에 올라온 우현수산물 소개란을 살펴보았더니 무안, 함평에서 직접 올라오는 산낙지 전문점이라는 것. 그러면서 산낙지의 효능이 열거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낙지는 타우린을 함유한 저칼로리 식품으로 콜레스테롤 양을 억제하고 빈혈예방과 허약체질의 보양식으로,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여성들의 피부를 최고로 곱게 해주고, 숙취를 해소해 준다.’
효능이 이 정도고 보면 정말이지 소에게 먹일 산낙지가 아니라 바로 당장 우리 가족이 먹어야 할 보약이 아닌가.

밥물도 못 맞추던 신혼생활과 타향살이

“제가 젊었을 땐 빽(白)바지 입고 진빨이 자전거 타고 시내를 누빌 정도로 꽤 놀았던 아가씨였죠. 그러다 10년 연상의 남편을 만나 집안의 반대 때문에 고향에서 못 살고 부산에서 신혼생활을 했죠. 그 때 처음으로 밥이라는 것을 해 본거예요.”

금성산자락 경현동이 고향인 박정숙 씨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덕에 부모님이나 남매들에게 ‘오냐 오냐’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사내처럼 활달한 성격에 사람들을 잘 사귀다 보니 그 시절엔 보기 드문 연애결혼을 하게 됐는데, 하필 열 살이나 연상인 해남 남자와 인연이 됐던 것.


친정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말 그대로 ‘야반도주’를 했던 곳이 땅도 하늘도 낯선 부산이었던 것.

이곳에서 이불 한 채, 냄비 하나로 살림을 시작했는데, 새댁이 밥을 하려고 보니 물을 얼마만큼 부어야 할 것인지, 연탄불 구멍은 어떻게 맞추는 지, 석유곤로의 불 조절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라 동네 아저씨를 붙잡고 물어볼 지경이었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의 품을 벗어나 그렇게 낯선 타향에서 신혼생활을 하다 첫 아이를 갖게 됐다.
그 즈음 친정에서는 딸이 걱정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부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친정어머니의 회갑이 다가오니 돌아오라는 기별을 받고 고민 끝에 고향땅에 다시 발을 딛게 됐던 것. 그때가 벌써 33년 전의 일이다.

나전칠기공방으로 기반 잡아

고향으로 돌아온 박정숙 씨 부부는 경현동에서 나전칠기공방을 운영하게 됐다. 원래 FRP조선소 기술자였던 박 사장의 남편은 구절판과 전화받침대, 모반 등 나전칠기제품을 만드는데도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었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공방은 마을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하루 2천개가 넘는 구절판을 만들어 낼 정도로 호황을 빚었고 돈도 웬만큼 벌게 됐다.

하지만 돈을 번다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인가?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화학약품 냄새가 너무 독하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되고, 10년쯤 되었을 때 박 사장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주 금계동 매일시장이 철거되기 전 시장통에 있던 한 식당에서 계를 치던 중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언니의 소개로 낙지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

고무대야 세 개로 시작한 낙지장사

그때가 16년 전의 일이다.

나전칠기 공방으로 어느 정도 자본을 갖게 된 박 씨는 지인의 소개로 매일시장 길모퉁이에 빨간 고무대야 세 개를 펼쳐놓고 낙지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함평, 무안 등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낙지를 받아 오던 중 진짜 맛있는 낙지맛을 알게 되고, 점포가 변변치 않으니 좋은 낙지로 승부를 하자 했던 것이 적중해 단골손님이 하나, 둘 늘게 되었다.

그러다 2012년도에 매일시장과 성북오일장이 통합돼 목사고을시장이 들어서면서 매일시장동에 점포를 갖게 됐다.

우현수산물, 큰아들의 이름을 따 지은 상호다. 품목도 낙지, 명태, 조기, 고등어, 꼬막, 병어 등 다양하게 구비했다.

▲전날 사간 낙지가 어찌나 맛있던지 다시 왔다는 고객을 위해 낙지 한 마리쯤은 흔쾌히 덤으로 얹어주는 박정숙 사장
하지만 박 사장은 목사고을시장에 입점한 뒤 얼마동안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금계동 시절에는 장사도 변변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좋은 물건이 들어오면 팔고, 안 그런 날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날이 많았으나 목사고을시장으로 들어온 뒤로는 하루하루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생활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사가 잘 될 때는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한여름 불경기일 때는 가게를 비워놓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는 박 사장.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든 안 하든 에어컨이며, 전기요금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본전’ 생각이 났다. 기왕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어떻게든 돈이 되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악착같은 욕심이 발동했다.

시장은 함께 잘 돼가는 공동체

박 씨가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 보겠다 마음을 먹자 어떻게 알아챘는지 손님들이 딴 마음 품을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찾아들었다.

평소 20~30만원 하던 매출이 잘 될 때는 60~70만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물건을 사간 손님 중에 간혹 마음에 안 든다며 불평을 해오는 손님이 있으면 기꺼이 갈치며, 명태며 2~3만원어치의 덤으로 보상을 해줬다.

그러다 보니 불평했던 손님들이 단골로 찾아오게 되고, 주변에 좋은 수산물 파는 가게라는 입소문을 내주면서 손님들이 늘게 되었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젊은 새댁이 “어제 사간 낙지가 어찌나 맛있던지 다시 왔다”며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젊은 새댁들에게는 용도에 따라 제사나 시제 때 쓸 낙지를 감아주기도 하고, 생선포를 떠 주기도 하는 등 서비스도 만점이다. 술 한 잔 하고 싶어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즉석에서 낙지며, 피꼬막을 다져 내놓기도 한다.

생물을 취급하다 보니 원산지 표시며, 수족관 관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지만, 목사고을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우현수산물에 들렀다 다른 가게에도 들를 수 있도록 서로 협조를 해야 하는 사업장이 곧 시장이라는 사실도 실감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박 사장에게 목사고을시장 상인들은 새로운 사업에 발을 딛게 도와준 은인이고, 함께 성공해 나가야 할 공동체인 셈이다.

5년 전 당뇨합병증으로 눈에 실핏줄이 터져 큰 수술을 했던 박 사장은 지금도 밤거리가 불안하기만 하다.하지만 이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목사고을시장의 1인기업으로서 성공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한 열정만큼은 그 어느 누구 보다도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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