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순 취재기획국장
요즘 나주 지도자들 사이에 사자성어 놀이가 유행인가 보다.

나주시의회 홍철식 의장은 얼마전 나주시가 제출한 혁신산단 조성을 위한 의무부담 동의안을 부결하는 본회의 마지막 인사말에서 ‘겸청즉명(兼聽則明)’이라는 말을 썼다.

처음 듣는 말이다 싶어 찾아보니, ‘겸하여 들으면 밝아지고, 치우쳐 믿으면 어두워진다. 여러 가지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들으면 어리석어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말뜻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면, 한 국가나 단체의 지도자는 무릇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즉,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의 말만 듣다 보면 자칫 총명이 가려져 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강인규 시장도 사자성어를 내놓았다.

나주시 조직개편과 관련해 공무원노조와 첨예하게 대치를 하다 협상이 타결되고 직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휴수동행(携手同行)’이라는 말을 썼다. ‘우리 서로 손잡고 함께 가자’는 내용이란다.

시장과 노조가 휴수동행의 마음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힘을 모아서 나주의 앞날을 힘차게 열어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 말을 전하며, “조만간 따뜻한 곰탕을 앞에 두고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아닌 한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로서 서로의 속마음을 내놓고 크게 웃는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요즘 나주에서 언론활동을 하는 기자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저 기자는 누구 편, 저 신문은 누구 편... 기자가 편을 두고 기사를 쓴다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격상실이며, 기자에게는 최대의 ‘욕’이다.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의 편이기 때문에, 누구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억울한 일이다.

객관적 공정성에 따라 공평무사한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그 시대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이 세 관서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벼슬아치면서 언론인의 구실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다산은 1810년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고향에 두고 온 큰아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담긴 편지를 보낸다. 제목이「시학연가계(示學淵家誡)」라는 글이다.

“언관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날마다 격언(格言)과 당론(黨論; 곧고 바른 의논)을 올려야 한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도 공격하고 아래로는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명확한 정의를 내려 언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를 거론했다.

가장 중요한 언관의 임무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해야 하며, 그 다음이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을 통치자에게 상달하여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악한 관료들을 퇴출시킬 때의 원칙도 설명했다.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처리해야지 치우친 의리에 근거하거나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당인과만 함께하고 타당인은 공격함)의 정신으로 처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산시대의 언관과 오늘의 언론인 역할에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많지만, 원칙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앙언론이나 지방언론이나, 지역 언론까지...

그렇다.

기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당동벌이(黨同伐異)다.

하지만 정치논리가 우세한 사회에서 그 것을 거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가 하는 것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매정한 몇몇 언론기관의 논조를 읽으면서, 다산의 언론관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후려친다.

나는 지금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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