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전남외국어고등학교 교사
지구상에 사람이 언제 등장하였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250만년 전, 아프리카 남부지역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방의 원숭이’이라는 뜻)가 최초의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원숭이는 사람처럼 두 발로 곧게 서서 걸어 다녔으나 오늘날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었다.

이들은 지구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사라져 버린다.

이후, 중국의 베이징과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인도네시아 자와 등지에서 좀 더 진화한 인류가 나타났으나 역시 현재 인류와는 다른 유인원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4만년 전에 나타난다.

이들은 뇌 용량이 오늘날 우리와 비슷하였으며 황색 인종 흑색 인종, 백색 인종의 신체 형질상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약 70만년 전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였다. 평안북도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발견된 29종의 동물 화석과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가 발견되었고,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동굴에서는 사람의 어금니 2개와 어깨뼈 한 점이 발견되었다.

북한과 남한의 학자들은 이 유물들이 모두 약70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나주 지역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전라도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나주, 화순, 순천, 장흥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나주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적어도 5만년 전의 것으로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5만년 전에 나주 지역에 사람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나주에서 구석기 유물은 금천면 촌곡리와 당가, 공산면 금곡리 용호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촌곡리 유적에서는 주먹도끼를 비롯한 129점의 석기들이 발견되었고, 당가 유적에서는 70여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촌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사용 흔적을 분석한 결과 사냥, 도살행위, 가죽가공, 뼈가공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깨뜨려 뗀석기를 만들었다.

돌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이다. 그렇지만 아무 돌이나 적당히 내리친다고 좋은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카로우면서도 단단한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알맞은 재료를 찾아야 했다.

오랜 경험으로 사람들은 부싯돌, 흑요석, 차돌, 규암, 현무암 등이 좋은 석재료임을 알았다. 촌곡리 유적에서도 석기 재료로 사용할 117점의 석재와 몸돌 41점, 망치 32점, 파편 13점 등이 발견되었다.

이 돌 재료를 이용하여 사람들은 찍개, 주먹도끼, 찌르개 등을 만들어 동물과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다듬었다.

음식을 요리할 때는 긁개, 밀개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석기 또는 나무나 뼈 도구를 이용하여 식물 줄기나 열매, 알뿌리를 채집하였으며, 강변에 나가 물고기와 조개 등을 잡았다. 이들은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였으며 동굴이나 막집을 짓고 생활하였다.

이러한 구석기 시대에 한반도와 나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주 오래 전 중국과 한국, 일본은 하나의 땅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황해와 제주도, 일본이 모두 육지로 연결되어 바다를 건너지 않고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이때를 빙하기라고 하는데 바다가 얼음으로 얼어 있었기 때문에 바닷물이 지금보다 훨씬 적어 해수면이 현재와 비교하여 100미터 정도 낮았다. 이 시기에는 물론 영산강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만 5천년 전부터 지구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얼음이 녹아 바닷물이 많아지게 되었고, 중국 대륙과 일본 사이에 바다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한반도 모습을 갖추게 된다.

영산강도 이때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였다. 이때부터 영산강 주변의 기름진 나주평야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농경이 발달하였고, 서남해로 열려있는 바닷길을 통해 풍부한 물산이 유통되고 다른 지역과 교류도 이루어지면서 독특한 영산강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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