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전남외국어고 교사
삼한을 호령한 목지국 진왕

3세기 마한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목지국이었다. 목지국의 위치는 충청도와 전라북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목지국의 진왕은 마한 소국연맹체의 맹주가 되었고, 왕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진왕은 무력으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소국의 지배자인 신지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목지국은 낙동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대하면서 진한과 변한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중국 군현과 교류를 하는 등 삼한의 대외적 교류를 주도하였다.

삼국지 동이전에 기록된 ‘진한과 변한 24국 중 12국이 목지국 진왕에게 종속되었다“라는 내용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처럼 삼한 전체를 호령하였던 목지국은 3세기 중엽에 대방군에게 패한 이후부터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백제에 밀리면서도 발전을 계속해 가는 마한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온조 집단에 의해 건국되었다. 한강 중류 지역으로 내려온 온조 집단은 마한 왕에게 땅을 받아 정착하였다.

온조와 함께 남하한 비류 집단은 한강 하류 지역에서 곧 소멸하고 만다. 온조 집단은 백제국을 세워 초기에 마한 소국연맹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한 왕에게 신록을 보내거나 전쟁 포로를 바쳤다.

기원 전후부터 백제는 성장을 거듭하여 세력을 키우면서 주변 소국들을 하나씩 통합하였고 그 영역도 넓혀갔다.

세력이 약화되던 목지국은 백제에게 밀리면서 멸망하였고, 백제의 세력은 날로 커져갔다.

그러나 한반도 남서부 여러 지역의 마한 소국들은 백제에 밀리면서도 오히려 발전을 계속한다. 이 시기에 조성된 무덤 주변에 도랑이 있는 분구묘의 규모가 더욱 커지는데, 이것은 마한 소국의 세력이 더욱 발전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3세기에 마한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 환경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원전후에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떨어졌고 고인돌 사회는 위축되었다.

그러나 3세기 무렵에 기후가 다시 온화해지고, 농기구와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농업 생산이 크게 늘어났다. 이로 인하여 마한 사회는 다시 활기를 되찾고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드넓은 평야에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산강과 바다를 잇는 편리한 수로를 통하여 다른 지역과 쉽게 문물을 교류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라도 지역의 마한 소국들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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