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선생
/나주외국어고 교사
마한 소국을 앞지르는 백제

3세기 중반 이후에 백제는 한강 유역에서 충청도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목지국 진왕 중심의 마한 소국연맹체는 해체되었고, 백제는 점차 독자적인 세력권을 확립하였다.

이때부터 백제는 마한 소국연맹체를 앞지르면서 마한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백제는 대방군을 공격하여 태수를 전사시켰고, 중국의 진 나라에 마한의 이름으로 사신을 파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전개되는 정치·경제적 교섭 과정도 주도한다. 백제는 계속 세력을 키우면서 아산만과 한강 상류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갔다.

이와 함께 마한의 여러 세력들은 흩어지면서 남쪽으로 밀리게 된다. 이때 아산만권의 마한 세력도 금강 이남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마한을 병합해 가는 백제

4세기 중반 백제 근초고왕대를 전후하여 백제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때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 해안지대를 확보하여 해상교역로를 장악하였다.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은 지금의 해남에 위치한 침미다례를 공격하여 지배하였다.

▲1917년 12월 23일 마한의 대표유적인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고분에서 훗날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금동관이 최초로 발굴되었다.

백제의 공격을 받기 이전에 침미다례는 백제와 왜 사이에서 해양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나, 백제에 협조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백제의 공격을 받고 병합되고 말았다.

이와 함께 전라도 서해안 지역의 여러 마한 세력들도 스스로 백제에 항복하였다.

이처럼 전남 지역의 마한 세력은 대부분 백제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영산강 내륙에 위치한 나주 지역의 마한 세력은 이후에도 계속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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