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훈/나주교회 담임목사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지난주일 찬양예배가 끝난 후 목회자 가족 전체가 산포 수목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거닐면서 파릇파릇 새롭게 돋아나는 연초록 어린 나뭇잎들을 보면서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든지 코끝에 진하게 와 닿는 풀냄새 뭔가 생동감이 있고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그 가운데 아무 말 없이 메타세콰이어 나무사이로 걷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우리들처럼 꽃구경을 하고 몇몇이 꽃놀이에 빠져 까르륵 웃는 사람도 있고, 꽃잎 사이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까르륵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꽃 숲에서 사랑을 나누며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론 그냥 바라보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가끔은 꽃을 꺽어서 내손에 가지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나만의 만족을 위해서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 손안에 내 생각 안에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만 홀로 즐기기를 원하지요. 그러면서 17세기 영국에 있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선 어린 아이를 사고파는 콤프라치코스가 있었는데, 당시 귀족들 사이에선 기괴하게 생긴 몸종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콤프라치코스는 아이들을 납치해 더 이상 자라지 못 하도록 관절 마디를 끊거나 눈·코·입을 기형적으로 만드는 등 신체를 훼손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런 귀족들의 유희를 위해 ‘그윈 플렌’은 어릴 때 유괴당해 입이 찢기게 됩니다. 유괴범들은 이 어린 소년에게 더 이상 울지 말라며 입을 웃는 모양으로 찢어버립니다. 세상은 이 소년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처박으면서 웃으라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나만의 기쁨을 위해서 꽃을 꺾어 대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지... 대상만 달랐을 뿐이지 내 속에도 어린 소년을 더 이상 울지 말라며 입을 웃는 모양으로 찢어버리며 웃으라고 강요하는 그들과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이 오월에 연초록의 나뭇잎처럼 많은 이들에게 평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무엇보다 연초록의 나뭇잎은 가을단풍에 대한 아름다운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리디 여린 나뭇잎이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초록색을 띄는 튼튼한 잎이 되겠지요. 그리고 한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곱게 물들이고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겠지요.

우리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처음 여리디 여린 모습의 순수함으로 많은 이들에게 평안과 행복을 안겨다 주고 점점 더 자라가면서 수많은 세파를 견디고 견뎌서 가을 즈음에 형형색색 예쁜 단풍이 되어서 온 세상을 멋있게 물들여 가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미래의 꿈나무라는 우리의 어린 새싹들이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양육해가기를 기도하며 이 오월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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