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발행인
난세(亂世)다.

지난 몇 년간 교수신문에서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시대의 어두운 면을 나타내는 한자성어들이 많았다.

2011년 엄이도종(奄耳盜鐘: 도둑이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어떤 일을 다급히 처리하기 위해 본 뜻을 거슬러 거꾸러 행하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속이다) 그리고 올해 대한민국 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몇 년째 말 그대로 세상이 온통 어지러운 난세다.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에서의 지도자의 통치술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난세엔 사회의 모습도 변한다. 노력보다는 줄서기가 더 통하고 근본적인 것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난무하는 사회로 변한다.

또 공공성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이 앞서는 사회도 난세에서 보여지는 특징이다. 이같은 현상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같은 난세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중국 청나라 시대 이종오란 사람은 난세에 후흑(厚黑)을 강조했다.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 黑)의 줄임말이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 마음을 시커멓게 사는 것이 난세에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난세의 시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도와 의리를 외치다가 자신의 몸을 망치고 멸문지화까지 당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 19세기 때 이종오가 난세를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후흑이다.

그래서 일까?

요즘 옳은 소리한다고 목소리라도 높이면 여기저기서 난도질을 당한다. 이유없는 난도질이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나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욕지거리부터 시작한다.

이는 공익적인 것보다는 개인의 욕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혹시나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까하는 걱정에서 일단 공격하고 보는 것이다.

공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부고위직에 앉으려는 사람들의 청문회라도 보고 있을려면 서민들보다 더 못된 짓은 다하고서도 근엄한 척하는 못된 사람들도 아주 많다.

이는 지도자의 리더쉽 부재도 이같은 현상을 만들어 가는 한 원인이다.

인간사회의 핵심인 사람들 각자는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그 보호본능은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려는 것만이 아닌, 어떤 때는 이기적인 마음으로도 나타나는 것이 보호본능이다.

그 이기적인 마음을 리더자는 시스템을 통해 또는 높은 가치를 내세워 이를 억제하고 더 좋은 곳으로 유도해야 하는데도 리더자 자체가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리더쉽을 발휘하게 되면 그 사회는 난세로 가게된다.

우리지역 역시, 그러지 않나 생각해 볼일이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는 체험의 장(場)이다.

주민들이 그 지역의 실정에 맞는 장(長)을 선택해서 그 지역의 여건에 맞도록 재정(財政)을 사용하라는 것이 지방자치제도의 개념이다.

이같은 뜻에서 출발했던 제도가 간혹 리더자들의 개인욕심에 의해서 지역이 패거리화 된다.

패거리화 된 지역은 옳고 그름이 없다. 내 사욕만 채워주면 그게 곧 최고의 가치가 된다.

그 가치는 어떠한 잘못도 용서토록 만들어 버린다.

곧 내편이면 모두가 옳게되고 내편이 아니면 모두가 그릇된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은 줄서기 문화가 공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사람들은 공익보다는 개인 욕심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을 모아줄 가치는 없어지고 어지러운 세상이 도래한다.

이종오는 후흑을 통해 난세를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순전히 기술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후흑으로 난세를 살아간다면 평생 살 맛나는 세상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난세를 바로잡으려는 올바른 희생이 있을 땐 세상은 달라진다.

그 높은 가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본심을 누르고 공익이 앞서가는 사회분위기를 만든다.

그가 바로 이 난세를 바로잡을 백마탄 철인이다.

새해 병신년엔 우리가 바라는 철인이 나타나기를 죽도록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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