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논설위원

이 한몫을 했다. 거북선은 명실공히 조선 최초의 장갑선(겉을 철판으로 덮어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배)이며 조선 수군의 용맹성을 보여준 대표적 전함이다.

거북선은 나대용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명을 받아 처음 발명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거북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배였다.

신라시대 장보고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한 청해진을 경영하면서 배 위에 방어용 등껍질을 씌운 독특한 전투선을 개발했다.

이 배는 속도가 빠르고 활이나 창을 이용한 적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거북 모양의 전함은 고려 말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때에도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태종실록> 13년 2월 5일 기록에 “임금이 임진강을 건너다가 귀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모양을 구경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거북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을 개발한 사람이었다.

기존의 거북선 모양을 바탕으로 그 위에 철갑을 씌우고 여러 기능을 보완해 많은 대포를 장착할 수 있게 발전시킨 것이다.

즉 나대용 장군은 이순신의 전략에 날개를 달아준 거북선을 당시의 전황이나 일본 수군의 전략에 대응하기 적합하게 개량하고 대포를 장착하는 등 군함을 재개발한 장군이라고 볼 수 있다.

나대용의 과학적 사고방식

사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은 거북선이 아닌 판옥선(板屋船)이었다. 명종 때 개발한 판옥선은 갑판이 2층 구조로 돼 있다. 그 덕분에 노를 젓는 노군들은 안전하게 노를 젓고, 군사들은 2층으로 올라가 적과 싸울 수 있었다.

배를 탈 수 있는 인원도 200명 정도여서 기껏해야 수십 명을 태울 수 있는 왜선보다 훨씬 컸다. 판옥선에는 많은 대포를 장착할 수 있었다.

▲나대용 장군 동상

거북선은 판옥선의 2층 갑판 윗부분에 둥근 덮개를 덮고 철갑을 씌운 것이다. 거북선은 승원 전원을 개판으로 보호하면서 쉽게 적선에 접근하고,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적을 심리적으로 위압하는 훌륭한 군선이었다.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 나대용 장군, 해군, 해양 등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미래 관광 자원이다.

그런데 나주의 나대용 생가에는 나대용 장군의 영정과 거북선, 동상, 생가(전남 나주시 문평면), 묘(장군의 묘 바로 위에 아버지의 묘가, 그 위에 할아버지의 묘가 있다.) 등의 자원이 있다.

또 충무공과 나대용의 장군과 부하 장수로서의 우정이라는 자원이 더 있다.

<충무공은 체암공이 없었던들 그와 같은 무공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체암공은 충무공이 아니었더라면 큰 이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고 권율 장군은 말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나대용의 말을 이순신은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나대용을 수하에 채용했다. 나대용의 자는 시망(時望)이고 호는 체암(遞菴)이고 금성(錦城) 사람이고 나주에서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북선에 대한 연구는 계속하여 ‘창선’이라는 배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대용과 이순신의 관계는 장수와 부하의 관계뿐 아니라 형제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체암이 병이 들자 이순신이 손수 약을 지어주며 “하루빨리 회복하여 군무(軍務)를 비워둠이 없게 하라.”고 말했다.

체암이 이순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자 체암과 열 한 명의 장수들은 옥문 밖에서 울부짖으며 이순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문을 숭상하던 시대에 보기 드물게 과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장수이기도 하다. 나대용 장군이 과학, 해양 기술, 전쟁사 등의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 나주는 체암 나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려야할 임무가 있다.

나대용 생가가 있는 마을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고 그 중심에 나대용 역사 과학관을 지어야 한다. 나대용 장군의 위상과 스토리텔링 자원을 과학관에 집적해 관광 센터처럼 활용해야 한다.

역사 테마파크를 영산강에

고막천을 따라 고막천 석교를 거쳐, 영산강과 나주 영상 테마파크까지 나대용 승리의 길 또는 거북선의 길 등을 구축하여 영산강 자전거길이나 영산강 둘레길을 조성해야 한다.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영산강 황포돛배와 연계해 거북선 해상 탐방 코스를 개발해야 한다. 임진왜란과 거북선, 이순신과 나대용 장군의 스토리텔링 테마 시설물과 안내판을 설치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 관광객에게 생생한 체험과 흥미로운 역사 학습을 제공해야 한다.

거북선 해상 정원, 산책로 등을 조성해 관광객들에게 정신문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경주에 있는 신라 역사과학관은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에 담긴 과학 예술적 가치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작 과정을 단계별로 재현한 정교한 복제품과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구성된 해설판은 역사 과학관의 가치를 높인다.

석굴암에 담겨 있는 놀라운 건축기술과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참으로 놀랍다. 석굴암뿐 아니라 첨성대와 물시계 등 우리나라의 시대별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문화재들의 정교한 재현과 해설은 문화재를 더욱 진지하게 이해하게 도와주고 있다.

청주의 고인쇄박물관은 1992년 3월 17일 문을 열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 발견된 옛 흥덕사지의 흥덕사지관리사무소로 출발하였다. 2000년 6월 증축공사를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신라 및 고려·조선시대의 목판본·금속활자본·목활자본 등의 고서와 흥덕사지 출토유물, 인쇄기구 등 650여 점이 보존·전시되어 있다.

청주국제인쇄출판박람회 개최, 흥덕사지 관리 및 보존, 고인쇄문화 및 활자 연구, 박물관 기관지 발간, 고인쇄 관련 자료 발간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

나대용 역사 과학관을 지어야 한다.

나대용 장군의 과학적 지식과 선박 제조 기술의 예술성을 선보이는 전시와 함께, 나라 사랑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전쟁 사료 박물관, 전쟁 과학 박물관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나대용 장군을 본받을 수 있는 체험관과 있어야 한다. 거북선을 활용한 전시물과 기념품을 판매해야 한다.

과학 지식과 전쟁 역사를 체험해볼 수 있는 시설들은 임진왜란 참전 당사국인 중국이나 일본인들에게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대용 장군의 위상과 스토리텔링 자원을 기념관에 집적해 관광 커뮤니티 센터처럼 구축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호국 정신을 선양하고 과학적 역사 인물 테마화에 따른 성과가 지역의 경제 발전과 연계되도록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역사 인물 관광 자원화 사업의 성패는 지역 주민들의 그 인물에 대한 자부심과 일반적인 테마 관광 자원화가 아니라 지역 관광자원과 시너지 효과로 연계되는 연계 관광지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나대용 장군은 우리 나주의 보물 같은 인물이다.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뿐, 전국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끌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 요소가 있다.

생가 등의 인프라에 관광 자원 개발 차원의 손질만 가해진다면 그리고 나주인들은 힘과 지혜를모아 나대용장군 역사과학관을 건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나주 관광의 보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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