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그의 33세가 되던 그해 9월 공민왕이 시해 되었습니다, 정도전은 이 사실을 명나라에 고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신흥강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망해가는 원나라를 가까이하는 것은 돌아가신 공민왕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오.”

그러나 이러한 일로 정도전을 미워했던 이인임은 오히려 정도전에게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원나라에서 오는 사신을 영접하는 일을 명했습니다.

“내가 마땅히 원나라 사신의 목을 베어올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명나라에 묶어 보내겠다.”
“저런, 버릇없는 자를 보았나. 어서 저자의 목을 베십시오.”
“정도전, 저 자가 나에게 탄압을 받아 유생들의 영웅이 되려고 하고 있소. 내 어찌 저 어린놈의 얕은 술책에 넘어가겠소?”

이인임은 정도전이 어리지만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자를 조정에 그냥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큰 화가 미치겠다.”

이인임 일파는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회유책을 썼지만 여전히 정도전이 강력한 반발을 하자 정도전을 나주 땅 거평부곡 소재동이라는 곳으로 유배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정도전이 귀양에 처해지자 그를 아끼는 개경의 많은 사대부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허어, 그래도 바른 말 할 줄 아는 고려의 몇 안 되는 기개 있는 관리였는데...”
“내가 이인임 시중에게 말을 잘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귀양 해배령이 올 것이오.”
귀양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정도전의 집에 온 친지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비키시오. 한 시가 급하오. 귀양을 가더라도 나의 뜻은 굽힐 수 없소이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무엇이 그리 급하오?”

그러나 염흥방의 간곡한 만류에 정도전은 오히려 곧바로 말위에 올라 유배지를 향했습니다.
“지금 왕명이 떨어졌는데 어찌 공의 말 때문에 내가 가지 않겠습니까?”

 

조국의 멸망을 차마 못 본체 할 수 없어
충의의 심장은 찢어지고
대궐문 손수 밀고 들어가
임금 앞에서 언성 높여 간 했다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을 목숨이니
구차하게 살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도다

시 한수를 읊고 나서 급히 말을 달려 나갔습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겠다며 귀양지로 향하는 정도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오히려 탄식을 했습니다.

“저런! 저런! 나라를 위해 참 아까운 인재인데 저 타협 할 줄 모르는 성격을 어찌 할고.”
말머리를 달려 나주를 향하는 정도전의 눈에 헐벗은 몸으로 배고픔에 지쳐 우는 어린아이들의 가여운 모습이 맨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것들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줄 수 없어 눈물짓는 부모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달라붙어 개미처럼 일을 해도 도무지 목구멍에 풀 칠 할 것이 없습니다.”
“그깟 사정 내 알바 아니니 빨리 소작료를 가지고 오지 못할까?”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요. 곳간을 한번 뒤져 보세요”‘

곡식 한 톨 없는데도 소작료를 걷으러 나온 자들의 행패를 온 몸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모습은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훨씬 더 비참했습니다.
“스승께서 분개 하셨던 토지 문제가 참으로 심각 하도다.”
정도전은 스승으로 모셨던 이색의 <고려사>의 <이색열전>에 있던 구절이 그때서야 구구절절 생각이 났습니다. 관리로 있을 때는 그저 머리로만 읽었던 구절 이었습니다.

백성이 하늘처럼 여기는 것은
오로지 밭에 있을 뿐이다.
몇 뙈기 안 되는 밭을 1년 내내 갈아봤자 부모와 처자를 먹여 살릴 만큼도 안 되는데 소작료를 걷는 자들은 이미 와 있다.

밭주인이 한사람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적은 곳은 서너 명이요, 많은 곳은 일고여덟 명이다.
어찌해 보려 해도 할 수 없으니 누가 기꺼이소작료를 갖다 바칠 것인가.

밭의 소출로는 소작료도 다 바칠 형편이 못되는데
어디에서 이자를 낼 것이며 무엇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먹여 살릴 것인가.
백성의 곤궁함이 이런 지경이다.

“허어! 벼슬아치라는 자가 이토록 처참한 백성들의 처지를 너무나 모르고 살았구나. ”정도전은 귀양지를 향하면서 그동안 개경에서는 보지 못했던 백성들의 처참한 처지와 곤궁함에 대해 탄식하면서도 지금은 자신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귀양 가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고! 부자의 땅은 강과 산을 경계로 하는데 우리 같은 가난한 백성은 송곳 꽃을 땅도 없으니 이 나라가 어쩌려고 이러는지”

“이런 나라는 얼른 망해야 되요, 얼른...”

곳곳에서 수탈을 당하는 백성들이 울부짖는 이런 광경은 정도전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조정에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결코 이 백성들의 삶을 몰랐으리라.”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백성들의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래, 언젠가 이 나라를 바로 세울 날이 있겠지, 내 그 때는 반드시 이 불쌍하고 가련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위민 정치를 하리라.”

귀양지 나주까지의 길이 가까 올수록 누구랄 것 없이 처참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훗날을 기약하며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정도전에게는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귀양길이 오히려 참으로 의미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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