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금
/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나주 땅이 가까워 올수록 참으로 평야가 비옥하고 넓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경을 떠나 귀양지로 내려오면서 보아왔던 것과 나주 백성들의 삶도 헐벗고 궁핍한 모습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품격과 예의가 있어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윽고 나주의 관문 동점문에 이른 그는 말고삐를 버드나무 밑에 매어놓고 터벅터벅 동점문에 올랐습니다.
“저 산이 그 명성 높은 금성산 인가? 저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식산일까? 옳지. 저기 바다 옆의 작은 산은 베를 메어둔다는 그 베메산인가 보다.”

정도전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기 전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나주를 군사적 요충지로 삼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주가 예사로운 땅이 아님을 여기 와서야 새삼 느끼는 구나.”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해온 지도는 이미 너덜 거렸습니다. 지도를 살피면서 여기 저기 나주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의 지형을 살펴보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정도전은 괴나리봇짐에서 붓을 꺼내들어 나주 동점문에 올라 느낀 강렬한 감상을 한편의 시로 적었습니다. 거평부곡 유배지에 도착한 그는 우선 황연이라는 사람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살았습니다.

“세상의 번거로움을 피해 개경에서 내려온 선비쯤으로 여겨 주시지요.”

▲삽화 성선경

“집이 비좁아 많이 불편 하실 것입니다”

황연이라는 사람은 그저 농사짓는 농부임에도 사리에 밝고 인정이 많아 날이 갈수록 귀찮은 기색은커녕 오히려 더 지극한 정성으로 정도전을 돌보았습니다.

“술이 향기롭게 익었습니다. 한 모금 향이라도 맡아 보시지요.”

귀한 안주까지 가져와 술을 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그의 모습은 평생을 농사만 짓는 사람임에도 오히려 어느 선비보다 절도 있고 품위가 있었습니다.

“허허... 이리 부족한 사람을 지극한 예로써 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올 가을에는 동네 사람들과 힘을 합쳐 저 앞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작은 초당을 하나 지어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거처가 비좁아 고생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이렇게 고마울 데가...”

“평소 늘 말씀하시던 두보의 초당처럼 그렇게 조그맣게 지어 드릴 테니 마음껏 시도 읊으시고 글도 쓰시고 평안하게 기거 하시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거평부곡 백동마을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쳐 작은 초사를 지었습니다.
“저희들이 넉넉하지 못해 방 한 칸에 마루 한 칸 밖에 지어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이 곳 초사에서 생활은 하시되 저희 집은 그대로 비워 두었으니 언제고 오셔서 편하신 대로 사용 하십시오.”

“아닙니다. 제게는 고대광실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집입니다. 참으로 감사 합니다.”
지극히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 정도전은 진정으로 이 집이 자신에게 족하고도 귀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곳에서 당나라 시인 두보처럼 시도 짓고 글도 쓰고 백성을 위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그런 장소로 부족함이 없는 초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주 거평부곡은 고려시대의 말단 행정단위로 주로 천역에 종사하는 하층민들의 집단 거주지였습니다. 그러나 부곡민들은 욕심 없이 순박하여 아무런 계산 없이 정을 주고받는 담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리. 평안하십니까요?”

초겨울 해가 서산에 저물 무렵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이사람 만복이 아닌가?”

의복은 너덜거리고 상거지 꼴을 하고 나타난 만복은 그간의 일을 자세하고 들려주었습니다.
“나리께서 뭐라 한 말씀 남기시지도 않고 떠나신 뒤로 마님께서는 곧 바로 몇 뙈기 되지도 않은 논밭을 파셔서 작은 돈이지만 이렇게 나리께 전달해 주시라고 저를 보냈습니다요.”

그때서야 만복은 허리춤에 두른 엽전 꾸러미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런, 아니 그럼 아이들과 식솔들은 무얼 먹고 산단 말인가?”

“마님께서 워낙 바느질 솜씨가 고와서 양반들의 옷을 짓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일이 많아서 식솔들의 끼니는 너끈히 해결을 하고 계십니다요.”

“허어, 명색이 왕을 모신 양반의 부인이 바느질로 끼니를 잇고 있다니...”
만복은 가정사와 조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일들에 대해서도 소상히 들려주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만복은 좁은 방안에서 진즉 곯아 떨어져 단잠에 빠졌지만 도전은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 참으로 미안하오. 아이들과 식솔들을 아녀자의 아름다운 솜씨와 덕행으로 잘 거두고 계신다니 참으로 고맙고 장하오.”

이곳 나주의 귀양생활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고 오히려 많은 것 들을 깨우치는 배움과 수양의 삶이니 염려치 말고 부디 건강하시라는 글을 구구절절 쓰며 맺으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가서 마님께 전하게”
“예, 나리.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만복이 나주를 다녀 간지도 해도 두어 달이 넘었습니다. 어느덧 해도 조금씩 길어지고 겨울이 가고 있었습니다. 부곡민들은 풍족한 땔감으로 정도전이 겨울을 나는데 조금도 춥지 않게 도왔습니다.

“이런 인정이 어디에 있을꼬.”

벼슬아치들 같이 세력으로 사귀고 헤어지고 당을 짓고 하는 모습이 아닌 소박하고도 진실한 모습이 정도전에게는 오히려 새롭게 백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정도였습니다.

귀양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주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지극한 예로써 정성껏 대해 주어 오히려 정도전이 그 들에게 항상 사람 사는 도리를 배우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이런! 또 귀한 고기 안주에 술이라니. 누가”?

햇살이 따스하여 오랜만에 말을 달려 회진 앞 바다를 한 바퀴 달려오다 보니 몹시 허기져서 초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이 또 조그만 소반에다 고봉으로 담긴 하얀 쌀밥에 김치와 고기, 술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입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노라니 가슴속 깊은 곳이 뜨겁게 뭉클해지는가 싶더니 정도전의 눈자위가 벌개졌습니다.

“이 춘궁기에 보리쌀 한줌도 아쉬울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귀한 쌀밥으로...”
나주 사람들의 사랑은 이렇게 깊고도 소리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차마 한 술 뜨기조차 아까운 하얀 쌀밥을 멀리서 귀양 온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죄인에게 정성껏 대접하는가 싶은 감사함에 정도전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내가 궁핍한 것을 불쌍히 여겨서인가, 아니면 먼 지방에 사는 까닭에 내가 죄인인 것을 몰라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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