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사천의 전설과 아가씨들

 

*삽화 선성경
 ▲김노금
/ 국제펜클럽회원·동화작가
보리는 더욱 튼실해지고 파랗게 물이 오른 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 대왕께서 이 곳 에 처음 발을 내딛으시고 고려를 건국 하실 때만 해도 얼마나 나라가 평안 하고 기강이 바로 섰었던가?”

 

정도전은 이 곳에 올 때마다 유심히 지형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곳에 고려의 군사들이 주둔했을까?”

왕건이 아직 고려를 개국하기전의 모습을 떠올릴 때 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저 곳에서 견훤과 궁예 그리고 왕건께서 장수였을 적에 자웅을 겨루셨을까?”

고려군사들의 승리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한 바닷가를 지나 얼마를 달리니 멀리 한참 푸르름이 짙어가는 완사천이 보였습니다.
“아, 저곳에서 목을 축여야 겠다.”한참을 달려와서인지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완사천의 물로 목을 축이니 비로소 천지가 푸른 기운이 도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산천이 아름답고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땅이로구나.”

충만한 생명의 기운으로 나주라는 곳이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살려온 땅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곳 나주에서 나신 장화왕후의 아드님 혜종의 후손으로부터 고려왕의 계보가 내려져왔더라면 지금처럼 나라가 어지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건의 아들 중 무예는 물론 왕재로서의 덕과 자질이 가장 출중했다는 혜종을 떠올릴 때 마다 늘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출신은 비록 한미했을지라도 이곳 나주 출신 장화왕후의 덕행이 가장 자애롭고 어질었음이 분명해.”

지금의 부패하고 썩어빠진 기울어가는 고려 왕실을 생각 할 때마다 정도전은 다른 스물여섯명의 왕비들과 이곳 나주 출신 장화왕후를 자주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래,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어. 이토록 개경과 멀리 떨어진 곳의 정치력 세력이라고는 누구하나 의지 할 이 없는 왕비께서 자신의 아들을 고려의 두 번째 왕으로 세우신 것은 다른 어떤 왕비들도 할 수 없는 일이셨지.”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운 혜종의 즉위 3년 만의 죽음이었습니다.
“역사에서도 얼버무리고 있는 혜종의 죽음은 아무래도 이복동생들의 독살이 분명해.”

아버지 태조 대왕을 따라 크고 작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왕건대왕께서 고려를 건국 할 때도 그 옆에서 고려의 건국을 지켜보았던 왕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장화왕후께서 잘 훈육하시고 기르신 아드님의 자질을 잘 알고 계셨기에 정치적 기반이 약해도 가장 고려를 잘 이끌어 나갈 왕으로 생각 하신 게 틀림없었어.”

자신이 피로 세운 고려를 건국해놓고 세상을 떠날 때의 태조 왕건을 생각 하면 더욱 분명 해지는 왕위 계승이었습니다.
“아쉽다. 참으로 그때의 역사가...”

아쉬운 마음을 가득안고 뒤돌아 서는데 멀리서 어린 처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리따운 두 처자가 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더니 고운 버들잎을 훑어서 물동이에 띄우는 모습이 어여뻐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아까와는 달리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가뭄에도 이곳 완사천물은 조금도 마르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해?“
“그러게 말야. 그런데 오늘도 왕건 대왕님처럼 멋진 장군님은 영 아니 오시네.”

수줍은 모습으로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아가씨들의 볼이 빨갛게 물이 들었습니다.

매어둔 말에 오르려다 멀리서 들리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정도전은 가까이 다가가 말을 겁니다.
“그 옛날 왕건 대왕님이 아니어서 미안하오만 이 우물과 대왕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 같소이다. 그려!"
시침을 뚝 떼고 묻는데도 처녀들은 오히려 반가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네 ...이곳 나주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어르신만 모르시나 봐요?"
“그 옛날 목이 마른 왕건 장군이 버들아기씨 에게 물을 청하자 처녀는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바쳤어요.

“그 모습을 본 왕건이 이유를 묻자 목마른 이가 물을 급히 마시다 체하면 약이 없기에 버들잎을 입으로 불어가며 천천히 드시라는 마음으로 그랬대요.”

“그랬는데 장군께서 지혜로운 모습에 감동을 받아 결혼을 하자고 하신 거예요”

앞 다투어 두 처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짐짓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정도전이 재촉을 했습니다,

“저런, 저런, 참으로 지혜로운 처녀 였구먼....”
그래서 결혼을 했구요, 거기서 낳은 아들이 나중에 왕이 됐어요.”
“아무리 그랬을라고..?”

정도전은 짐짓 처녀들에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건넸습니다.
“아니예요. 정말입니다.”

어려 보이는 처녀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정말이라며 정색을 했습니다.
그 분이 고려의 두 번째 임금님이신 혜종대왕님 이시어요.”

말을 마친 두 처녀는 급히 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동이를 이고 갔습니다. 그때 빨래터로 내려가던 아낙들이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호호호,... 이제 우리 동네 숙향이랑 은홍이 좋은 신랑 만나 시집가겠네.”
“그러게 말이예요. 저렇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완사천 이야기를 전하고 나면 좋은 데로 시집간다는 말은 암만해도 참말인가 봐요.”

“그 부잣집에서 그렇게 발이 닳도록 중매를 넣었는데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나서 맘을 못 정했다더니만 이제 맘 놓고 시집보내겠구만.”

“아이구... 은홍이랑 숙향이랑 둘이서 함께 숙제를 풀었으니 더 잘살겠네...호호호”
동네 아낙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도전은 비로소 두 처녀들이 앞 다투어 완사천의 이야기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서 시집을 가면 반드시 부자가 되고 가문이 번성해진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나주의 이야기였습니다.

“거,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로고...”

완사천에 얽힌 고려건국의 영웅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래도록 널리 널리 전하고자하는 나주사람 들의 지혜가 참 그럴듯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백성들이 웃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내 오늘처럼 마음이 즐거운 적이 없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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