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북구 /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영산포쪽식물
영산포쪽식물

지난 2일 미국 메릴랜드 미술대학(MICA)에서는 볼티모어 천연염색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원래 지난해 4월에 계획된 것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한 끝에 온라인상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심포지움의 한국 천연염색: 전통과 현대의 만남 그 이후에 대한 발표자 및 토론자로 참석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한국 천연염색의 차별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수하다고 생각되나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특별하지 않고, 수준이 낮은 것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것이나 국제적으로는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생각 하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가장 비중을 둔 것 중의 하나가 과거 영산포에서 행해졌던 쪽 염료 제조 과정 중에 가마니를 이용했던 것이다.

쪽 염료의 제조는 보통 쪽을 수확해서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서 쪽 잎사귀에 있는 인디칸(indican)을 추출한 다음 소석회를 첨가하여 인디고로 만든다. 인디고가 항아리 아래에 침전되면 바가지를 이용하거나 항아리를 기울여서 윗물을 제거한다.

그 다음 시루에 천을 깔고 인디고가 섞인 죽 상태의 쪽을 올려놓아 탈수를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수의 문헌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1940년대 영산포에서는 새 가마니를 펼쳐서 세워 놓고, 그 속에 쪽죽을 부어서 탈수를 하는 방법이 행해졌다.

이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방법이다. 쪽죽을 대량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고, 과학적인 방법이 채용된 것이다.

나주 영산포에서 행해 졌던 이 우수한 기술과 지혜는 잊혀질 뻔 했다. 이것이 발굴된 것은 문화해설사인 이성자 님의 도움이 컸다. 영산포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성자 님은 영산포의 쪽염색 문화를 알려 주었고, 영산포 가마태 마을에 거주하는 고 한0수씨를 소개해 주었다.

고인이 된 한0수 씨는 200995일에 영산동 가마태 마을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했다. 고인은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가마니를 이용해서 쪽죽의 탈수를 했던 방법을 알려 주셨으며, 인터뷰를 하고 난 후 23일 만에 작고했다.

1940년대 나주 영산포 가마태 마을에서 쪽죽을 가마니에 부어 탈수하는 방법(그림 박하용)
1940년대 나주 영산포 가마태 마을에서 쪽죽을 가마니에 부어 탈수하는 방법(그림 박하용)

쪽죽을 가마니에 부어서 탈수를 하고 니람(泥藍)으로 만들었던 방법은 나주에서 존재했던 세계 유일의 방법이며, 이번 심포지움에서 세계 30개국의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고인을 소개받은 것도,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은 행운이었다.

나주 출신의 메릴랜드 주시사 영부인인 유미 호건 여사의 천연염색에 대한 관심에 의해 볼티모어 천연염색 심포지움이 개최되었고, 이 심포지움을 통해 나주의 쪽문화가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세계 천연염색의 자산으로 된 것도 드라마틱했다.

만약에 이성자 님이 고 한0수씨를 소개해 주지 않았다면, 만약에 24일 뒤에 고 한0수씨를 찾아뵈었다면 영원히 사라질 뻔한 나주 쪽 문화였다.

나주에는 영산포의 쪽 문화 사례에서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 문화적 가치가 재발견되지 못한 것들 또한 많다.

그것들 중에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국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서 활용하면 가치가 빛나는 보석들도 없지 않다. 영산포 쪽 문화를 교훈 삼아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찾고 활용해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기여했으면 한다.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