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범 부위원장
/민주당 사회복지특별위
한전 공대 설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광주와의 유치 경쟁과 부동산 투기 과열이 시작됐다.

공약 논의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한전 공대 설립 공약이 어떤 진통 끝에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첫째는 지나친 관심과 그릇된 기대 때문이다.

한전 공대 설립이 전남과 광주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은 4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충장로 유세에서 “세계 최고의 에너지 인재를 양성해 에너지신산업의 세계적인 거점으로 이끌어갈 ‘한전 공대(KEPCO Tech)’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였다.

혁신도시의 정주여건 개선과 나주-광주간 광역철도망 구축, 한전이 추진해온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의 국책사업화처럼 지역사회가 갈망해온 공약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관심이 모아졌다.

대학 설립 본연의 목적보다 토지 수용과 보상, 인구 유입, 인근 지역의 개발 및 그에 따른 지가 상승과 같은 부수적 효과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나주시의 부적절한 대응 때문이다.

강인규 시장은 6월 9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가 한전 본사에서 개최한 '에너지밸리 조성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한전공대 설립 부지로 산포면 호혜원 일대와 송월동 LG화학 일대 두 곳을 제안했다.

부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통해 광주시를 자극하고 가뜩이나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어버린 것이다.

이에 맞서 윤장현 광주시장은 6월 21일 김갑섭 전남도지사 권한대행을 만나 "떡도 익기 전에 싸운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맞지 않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윤 시장은 또 다음 날 열린 민선6기 3년 결산 기자회견에서 "객관적인 연구, 용역 판단을 통해 서로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광주와 나주간의 유치경쟁을 시사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시민들도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며 제각각 자신의 집 앞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다.

땅 값은 또 어떤가?

혁신도시 주위의 소위 유력하다는 후보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땅 값이 오르고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한전 공대는 소수정예 연구중심대학

한전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은 계획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전 공대 설립이 국정과제로 채택되면 TF팀을 중심으로 준비를 시작해 3년 5개월 내에 설립 을 마친다는 방침이다.

별 탈 없이 진행된다면 2021년에는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전 공대는 도대체 어떤 대학일까?

지난 6월 9일 한전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회에 보고한 ‘에너지밸리 발전방안’에 따르면 한전 공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래형 인재 양성’과 ‘지역혁신체계(RIS)의 중추적 역할 수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한전 공대의 모델이 되고 있는 ‘포항 공대(POSTECH)’를 살펴봐야 한다.

지난 1986년 대한민국 최초의 소수 정예 연구중심대학으로 개교한 포항공대는 현재 11개의 학과(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생명과학과, 신소재공학과, 기계공학과, 산업경영공학과, 전자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과, 화학공학과, 창의IT융합공학과), 1개 학부(인문사회학부), 2개의 전문대학원(철강대학원, 엔지니어링대학원)과 1개의 특수대학원(정보통신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설연구기관으로 가속기 연구소를 비롯한 17개의 법인승인연구소와 56개의 자체승인연구소가 있고, 미국을 비롯한 29개국 104개 대학 및 기관과 해외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학생 수는 2017년 기준 대학이 1,472명, 대학원이 2,147명이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수(전임교수)는 270명, 연구원은 630명이다. 대학과 연구소를 포함한 부지 면적은 1,627,255㎡(약 49만3천 평)이다.

대학 신입생은 매년 입학사정관제로 320명을 선발하고 졸업생의 약 30%는 기업에 취업하고 나머지 70%는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취득한 뒤 연구개발 분야에서 종사한다.

결국 한전 공대는 소수 정예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에너지 신산업을 이끌어갈 전문인력 양성과 에너지신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핵심기술의 연구 개발을 통해 산·학·연·관 협력체계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대학 설립을 위해서는 50만 평 안팎의 토지 수용과 개발이 이루어지고 중장기적으로 약 4천 명에 달하는 인구 유입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입학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업과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학교의 특성상 인근지역에 대학촌이 형성되거나 그로 인해 인근의 땅 값이 상승하는 등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전 공대에 대한 그 이상의 기대는 금물이다.

자치단체들도 대중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에 편승해 한전 공대를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과대포장해서는 안된다.

한전 공대는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대학처럼 에너지밸리의 성장을 주도하고 에너지밸리를 제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만드는 역할을 할 핵심 기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대 관건은 속도

한전 공대 설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속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주혁신도시를 10개 혁신도시의 성공모델로 만들려고 하고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전이 10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는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광주와의 유치 경쟁이고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지가 상승이다.

우리는 전남대병원이 지가 상승으로 인해 당초 예정지였던 나주가 아닌 화순으로 옮겨간 것과 한전의 에너지밸리 R&D센터 설립이 광주와의 유치 경쟁으로 반 년 가까이 늦춰진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나주시는 혁신도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광주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면서 갈등은 최소화해야 한다.

우선 광주시가 요구하고 있는 혁신도시 공동발전기금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그로 인한 갈등이 혁신도시 유치 경쟁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시기상조라며 미루기만 하다가는 소탐대실할 수 있다.

앞으로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광주시를 자극해 유치경쟁이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혁신도시 인근 지역의 부동산 투기를 막아 지가 상승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시민사회 역시 보다 신중한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유치에 나설 이유도 없고 그럴 시기도 아니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전 공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빛가람 혁신도시의 산·학·연·관 협력체계를 주도할 핵심기관인 만큼 혁신도시 인근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후보지는 앞으로 한전이 용역을 통해 입지 선정 기준을 확정하고 난 다음 추천해도 늦지 않다.

지금 지역별로 내세우고 있는 유치의 명분은 앞으로 한전이 용역을 통해 확정할 입지 선정 원칙을 충족시킬 때에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한전 공대의 설립 목적과 규모, 기대효과, 바람직한 유치운동의 방향과 내용 등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가 사익이나 소지역주의를 앞세워 지역발전의 호재를 또 다시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시민의식을 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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