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나주시 보산동 추모관에서&아이에서 어른까지 전국에서 찾아 ‘한마음’

▲지난달 30일, 나주나씨 종친회는 나주 보산동 추모관에서 충효예 인성캠프를 열었다.
“저는 나주나씨 직장공파 나 아무개입니다.” 짝짝짝!

지난달 30일, 무더위가 35~6도를 오가며 최고조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

광주~목포간 국도1호선인 나주에서 목포방향으로 다시면을 조금 못가 오른쪽으로 빠져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주나씨 추모관이 턱하고 버티고 서있다. 나주시 보산동 산 42번지이다.

이날 추모관에는 아이들부터 어른들 또 여자들까지 60~70여명이 모인 가운데 ‘나주나씨 뿌리알기 충·효·예 인성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전국각지에서 나주나씨 본(本)을 가진 사람들이 캠프에 참여했다. 각자 사는 곳은 다르지만 나주나씨라는 관계로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더욱 하얀 유니폼이 그 뜻을 잘 나타내 보였다.

나주에서는 나익수·나종석 전 시의장과 나천수 박사, 나경수 전 효동환경 대표, 나상문 전 나주시공무원노조위원장 등의 얼굴도 보였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40여분동안 진행된 후, 문학박사인 나천수 박사를 통해 본격 ‘선조님들의 흔적 바로알기, 강의로 본격 행사에 들어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나주나씨 종친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나천수 박사는 70여페이지에 달하는 나주나씨의 역사를, 자료를 통해 고증을 한 후, 이를 하나씩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나주나씨 최초 족보는 1721년 조선 경종왕때 두동(斗冬)공께서 당시의 전국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자료들을 수집해서 종합보라 할 수 있는 신축보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나주나씨 대동보의 기초가 되었다.” “시조 부(富)가 고려에 정착한 시기가 송의 멸망시기인 1126년 경이니 최초 족보는 부(富)후 약 600년 만에 족보의 틀이 만들어 진 셈이다.”

나천수 박사는 1시간이 넘도록 △나주나씨 시조 부(富)의 나주 정착 역사 △연안군파 파조 나세공을 통한 나문의 역사접목 △나성군 나공언 소개 △나주나씨 도선산 묘 위치도 및 비문과 그 해설 △성(姓)과 본관(本貫)의 형성과정 △ 무신란과 나주나씨와의 관련 역사적 재조명 등에 대해서 설명한 후 강의를 마쳤다.

70여명이 모인 이날 추모관은 나천수 박사의 뿌리찾기 강의가 진행되면서 모두가 더위도 잊은 듯 귀를 쫑긋 기울였다. 강의시간 내내 추모관은 조용했다.

모두가 그만큼 나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얘기이다.

이번 캠프를 준비한 나주나씨 반계공파 26세손 나종석 전 나주시의장은 “갈수록 보기 좋은 것만 좆는 요즘 세태의 젊은이들에게 나의 뿌리를 알려주며 중심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며 “이같은 캠프를 통해 뿌리없이 왔다갔다하는 부평초보단 나의 뿌리를 통해 중심있는 삶을 살아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오후에 여흥으로 이어지면서 각자가 한 뿌리임을 인식하고 내년에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조성환 기자
jn-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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