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는 ‘왜(why)’라는 물음이 없다. 

왜? 왜? 왜?가 있어야 하는데, 도통 그 '왜(why)’가 없다. 

이는 결론만 있고 그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이유)'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보니 '설(設)'만 난무한다. ‘왜(why)’라는 물음을 통해서 깊은 이해를 이끌어 내야하는데 그  ‘왜(why)’가 없다보니 대충 “그럴 것”이라는 추측으로만 끝나버린다. 

특히, 요즘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선 그 ‘왜(why)’라는 물음은 우리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물음이다. 

어떤 사람이 “A라는 사실을 B라고 생각 한다”라고 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나와야 되고 또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근데, 지금 우리사회에선 그 ‘왜(why)’라는 물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설(說)'과 '가짜'들만 난무하고 진실은 뒷전이다. 

그 ‘왜(why)’가 진실을 밝히는 횃불인데도 말이다. 

그 ‘왜(why)’는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문사이다. 

인간의 삶이란?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항상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결론을 얻어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인간세상에서는 ‘무엇 나와라 뚝딱 하면 느닷없이 한 순간에 나타나는 결과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항상 어떤 원인에 의해 상황(과정)이 전개돼 가다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세상의 법칙이다. 

이러한 인간세상의 법칙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왜(why)’라는 물음이 필요하고, 그 ‘왜(why)’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그래서  ‘왜(why)’는 인간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음이며 도구이다.

그 ‘왜(why)’라는 물음을 통해서 우리는 나의 앎을 충족시켜갈 수 있고 상대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는  열쇠가 바로 그 ‘왜(why)’라는 물음이다. 

평상시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느닷없이 행운이 찾아와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우리의 귀를 감동 시키지 못한다.

반면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어려운 몇 고비를 넘겨가며 성공한 얘기가 우리의 귀에 착 달라붙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정'이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생얘기에는 그 ‘왜(why)’가 중요한 것이다. 

그 ‘왜(why)’를 통해서 나를 알고 상대의 깊은 얘기를 알고, 또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아주고... 그 '왜(why)'만이 그일을 할 수 있다. 

코끼리를 알기 위해 장님들이 코끼리의 일부분만 만지듯 해서는 영원히 그 코끼리의 실체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왜(why)’를 통해서 장님들은 각자의 생각을 분석하며 합쳐가며, 내 마음속에 기둥으로만 보였던 코끼리가 온전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와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그 ‘왜(why)’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왜(why)’는 우리를 완전에 가깝도록 하는 인간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요한 도구를 지금 잊어버렸다. 

우리의 대화 속에 의문사 ‘왜(why)’가 사라져버렸다.

간혹, 왜를 남발하면 누군가는 “×가지 없는 ×”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오히려 '미친×' 취급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 ‘왜(why)’가 우리 입에서 그동안 금기시돼 와버렸다.

하지만 이젠 그‘왜(why)’를 우리 입에 착 달라붙도록 해야만 한다.

인간세상에서 ‘왜(why)‘라는 물음을 던질 수 없는 성역은 없다.

왜 그러니? 왜 그랬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 왜? 왜?…. 

그 '왜(why)’라는 물음. 그 ‘왜(why)’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또 최상의 방안을 선택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우리에겐 지금, 그 “왜? 왜? 왜?”란 물음이 꼭 필요하다.  

그 ‘왜?’는 우리를 살찌우게 하는 의문부호이다.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도 그 ‘왜(why)’를 남발해야 한다. 

그 ‘왜(why)’를 던져야 만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미래사회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왜(why)’라는 의문부호를 입에 달고 ‘왜(why)‘를 습관처럼 외치며 살자. 

그 ‘왜(why)’는 미래에 또 나를 찾는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 의문부호 ‘왜(why)’를 우리는 죽도록 사랑하며 살자.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왜? 왜? 왜?”를 습관처럼 외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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