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김양순
편집국장 김양순

백호문학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성이현과 작별하며(留別 成而顯)’라는 시판이 눈길을 끈다.

出言世謂狂(출언세위광) 말 뱉으면 세상이 나더러 미치광이라 하고

 緘口世云癡(함구세운치) 입 다물면 나를 바보라 하네 

所以掉頭去(소이도두거) 그래서 고개 저으며 떠나가지만

豈無知者知(기무지자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어찌 없으랴

사실 백호는 세상과 화목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백호를 미치광이 취급하고, 백호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외 없이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백호의 외손자 미수 허목(15951682)은 묘비명에당시는 동서분당의 의론이 일어나 선비들은 명예로 다투고 서로 추켜세우고 이끌어 주고 하였다.

그런데 임제는 자유분방하여 무리에서 초탈한 데다 굽혀서 남을 섬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랬다.

임제는 동인·서인 어느 당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붕당에 비판적인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전한 백호의 일화 한 토막이다.

백호 임제가 말을 타려고 하자 하인이 나서서 말하기를, “나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습니다라고 하니, 백호가 꾸짖었다.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고 하였다.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중도(中道)의 길이야 말로 공자가 말한중용(中庸)’이다.

 

서론이 장황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주문인협회가 회장자리를 놓고 7개월째 감정싸움을 넘어서 법정소송에 이전투구(泥田鬪狗)까지 벌이는 상황이 요지경 속이다.

지난 연말, 문인협회 전·현직 회장 등 몇몇이 모여서 회장을 뽑았다.

임원회의라고는 했지만 실제 임원이 아닌 사람이 포함되고, 임원인 사람은 참여하지 못한 그런 회의였다.

명분은 코로나19’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임원들과 회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총회를 거치지 않은 회장 선출에 항의하며 법원에 회장의 선임결의무효 확인청구 소송과 회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잇달아 제기했다.

법원은 회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회장은 이의제기를 해서 또 다른 법정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현 회장은 전 임원들에 대해 회비 반납소송에 공금횡령,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까지 굴비 엮듯이 법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뒷담화가 가관이다.

N고등학교 동기동창생들끼리 회장자리를 놓고 다툼의 시작이었다는 얘긴 또 무엇인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 글을 쓴다는 문인들 사이에 오가는 추태와 추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서로를 헐뜯고 서로에게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 이편에 모이고, 저편에 모이는 이런 모습이 진정 나주문인들의 자화상이란 말인가?

한 문인은 나주문인협회 회원이라는 소속을 밝히기 남사스러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문학공모전도 포기했다고 한다.

수십 년을 문학동지, 문우 운운하며 동지애를 과시하던 문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했을까.

되짚어보니 그들의 논란 이면에는 백호문학상이 있었고, 백호문학상의 상금이 있었고, 결국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심사관행이 화근이었다.

백호의 문학 혼을 기리자고 제정한 문학상에 백호는 없고 상금만 남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백호가 문제였던가? 백호에게 길을 묻는다.

出言世謂狂(출언세위광) 말 뱉으면 세상이 나더러 미치광이라 할테니/ 豈無知者知(기무지자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어찌 없겠는가

나주문인들이여, 백호의 문학혼을 기리는 백호의 후예가 되자.

서로를 향한 창을 내려놓고 펜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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