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나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국립나주병원 노인정신과장

김경민나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국립나주병원 노인정신과장
김경민나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국립나주병원 노인정신과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대유행이 1년 이상 지속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 됨에 따라 사회활동 및 경제활동 등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생기는 변화들로 인해 소위 코로나 블루로 대표되는 정서적인 어려움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다.

단순히 제한된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차원을 넘어 보다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울증은 단순히 코로나 19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과 같은 기분 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6년 이래 해마다 평균 6.9% 씩 증가하여 2020년에는 100만 명을 넘겼다.

뿐만아니라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 발표한 2분기 국민 정신건강실테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성인 2063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12.4%최근 2주 사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한국 성인 8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을 정도로 심한 정서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주요우울장애는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와는 명백히 다르다. 우울감은 슬픈 일이나 좌절 등을 경험했을 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상태는 이러한 우울감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심하게 영향을 미치는 상태로 단순히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넘어 생각, 흥미, 의욕 및 동기, 행동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정신기능이 저하되고, 생리적인 변화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병상태를 의미한다.

2주 이상 거의 매일 하루에도 수 시간 지속되는 우울한 느낌과 함께 흥미감소, 식욕의 변화(감소 혹은 증가), 불면, 피로감 및 에너지 감소, 부적절한 죄책감, 집중력 저하, 반복적인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시급한 개입이 필요한 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때때로 우울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심각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우울하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소아청소년에서의 우울증이다. 소아청소년들의 경우 우울증이 있을 때 우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많이 내거나 매사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소아청소년들에게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성적이 떨어진다던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들이 나타난다면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소아청소년들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단순한 사춘기 혹은 비행으로 오인되는 경우들이 많다.

노인들에게서는 우울증이 모호한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수면장애나 기억력 저하는 물론 신체 통증까지 우울증과 관련하여 나타날 수가 있다. 많은 노인들이 잠을 못자는 것을,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혹은 온 몸 여기저기가 아픈 것을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받아들이며 무력감을 경험한다.

물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몸에서는 노화반응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수면 양상의 변화, 기억력의 변화, 신체 기능의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개선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심한 불면이나 신체적 통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 받고 있다면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우울증은 질병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은 명백한 생물학적인 원인을 가진 뇌의 질병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러 연구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정상인들과 다른 양상을 보임이 밝혀져 있다.

실제로 우울증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들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작용을 함으로서 부적절하고 과도한 정서적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며 치료의 필요성을 당연시 한다.

다친 스스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을,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고 다리가 부러진 것에 대해 스스로의 나약함을 자책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과도하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주변인들도 고통을 인정해주고 치료를 권고하기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안 그래도 무너진 마음은 산산조각 부서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내몰리게 된다. 우울증은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마음이 부서진, 그리하여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적인 상태이다. 한번 부러진 다리도 적절하게 치료받는다면 다시 견강하게 회복될 수 있는 것처럼 한번 무너진 마음도 동일하게 잘 치료받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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