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 / 국립나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현주 / 국립나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현주 / 국립나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른 집 아이들도 다 겪는 사춘기를 좀 유별나게 겪는다 했어요. 씻으려고도 안하고 우울해보이고, 공부는 하는데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목표했던 데는 못가더라도 어디든 대학가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원하던 대학을 못 가서인지 학교를 잘 안가려고 했어요. 수업 때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 자기를 따돌리고 욕한다면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도 전혀 못 사귀고,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는데도 며칠 못가서 직장 사람들이 자기 욕을 하면서 괴롭힌다고 그만두고.”

정신과적인 면담을 통해, 발병한지 10여년 만에 조현병으로 진단받아 첫 치료를 시작하게 된 환자의 일상은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의 치료와 회복을 돕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삶에서 증상으로 인한 부정적인 변화가 광범위하게 많아지기 전에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이 조현병과 같은 정신과 질환에 있어서도 질병이 만성화되기 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예후에 큰 영향을 준다. 치료를 받으러 오기까지의 증상의 기간이 짧을수록 치료 반응이 우수하며, 환자의 기능 손상을 예방하고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병은 세상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판단, 처리하는 기관인 뇌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생각, 감각, 인지기능 전반에 이상한 경험들이 나타난다. 조기 발견 및 치료적 개입이 늦어진다면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받아들이는 정보와 이를 판단해 적절히 대처하는데 이상이 지속되고 심화되는 악순환으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가족을 포함한 주요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직장생활에서도 잦은 실패를 경험하며 원하는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질병 경과의 특성상 한 번 만성화되면 환청과 망상 등의 주요 증상이 소실된 이후에도 기능의 회복이 어려워 환자 개인, 환자 주변의 삶,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조현병의 경과 상, 뚜렷한 정신병적 증상이 발현된 시점부터 최대 5년까지의 시기인 조기 정신증시기는 치료와 회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기 정신증 시기 환자들의 증상은 개별로 다양하며, 증상으로 인해 기존에 잘 해내던 일상과 대인관계에 지장이 생긴다. 예를 들어, 환자들은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이며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대화의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이 끊긴 것처럼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기도 한다.

다양한 감각기관에서의 자극에 과민(, 소리, 냄새)해지거나 환청, 환시와 같이 자극이 없어도 감각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는다거나, 합리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나에게 원한을 갖고 있다는 확신에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기도 한다. 종교적이거나 추상적인 사고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치료의 골든타임인 조기 정신증시기를 놓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신과적 증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정신질환 및 약물치료를 포함한 정신과 치료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면담이나 치료를 꺼리기도 한다.

정신증 증상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라서 자신이 받아들이는 이상 감각이나 사고의 장애로 인한 증상이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스스로는 병이 없다고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 주변의 가족들이나 친구들도 발병 위험이 높은 청소년/청년기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이나 학업, 취업 등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여기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심각도를 간과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조기 정신증에서 치료를 시작하기까지의 기간은 다른 신체질환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조기 정신증에서의 치료 목표는 증상을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을 회복시키고 환자가 건강하고 주체적인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과 상황을 수용하며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대처하며 주변의 지지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의사와 상의하여 필요하다면 적정량의 약물치료를 받아 적은 용량에도 치료에 신속하게 증상호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증상의 회복을 개인의 의지문제로만 생각하거나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치료에 대한 불안감으로 증상이 악화되면, 회복으로 가는 길은 힘들고 늦어지게 된다. 증상으로 고통 받는 개인이나 주변인이 있다면 빨리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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