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유서 물구나무 선 나주시의회

▲김양순 편집국장
▲김양순 편집국장

2021년 시월 어느 날 이들의 대화는 시작된다. 평소에는 깔끔한 신사복차림에 왼쪽 가슴에 금빛 번쩍이는 뱃지를 차고 다니던 그들이다.

이 의원: 왜 그날 안 했느냔 말이야.
김 의장: 집행부는 이미 올라가고 10시 20분까지 난장토론이 되었어. 그거에 머리가 멍해지고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몰라서 본회의장에 올라가서는 놓쳐버렸다고 얘기했잖아.
이 의원: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든 안 해주든 왜 18일날 안 해주냔 말야. 
김 의장: 내가 망각을 했다니까. 머리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서.
이 의원: 그게 아니잖아. 18일날 왜 안해줬냐니까?
김 의장: 염병허고 있네. 
이 의원: 똑바로 이야기해.
김 의장: 실수한 건 사실이고 의도적으로 한 근거가 있냐. 자네만 내가 안 해준 줄 아나. 안 그래도 분명히 자네한테 사과를 하겠다고 했지 않나. 그리고 마지막 날 하자 말했지 않나.
이 의원: 의도적으로 했던 거잖아. 나는 18일날 하려고 신청을 했잖아. 사퇴해.
김 의장: 그것이 사퇴할 일인가?
이 의원: 당신이 의장 시절에 이런 수모를 당했으니 사과를 받아내고 징계를 내려야 할 사람이 당신 아냐?
이 의원: 의원들 책상 위에 있는 5분발언 내용을 왜 치우라고 했어?
김 의장: 내가 치우라고 했다고?
이 의원: 치우라고 했잖아.
...
대화의 내용으로만 봐서는 얼추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이 일에 뜻이 맞지 않아서 다투는 것쯤으로 보인다.

진짜 그런가 싶어서 이들의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김 의장 1957년 1월 10일생, 이 의원 1968년 9월 13일생, 무려 11년 8개월의 연령차이가 나는 나주시의회 의원들이다.

하긴 장유유서 구분 없이 서로 삿대질하고 고함지르고 육탄전을 벌이는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에 익숙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지방의원들에게 그 이상의 체면과 품격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주시의회 사태는 시민들에게 ‘막장의회’의 민낯 그 자체였다.

애초 이상만 의원은 5분발언을 통해 나주시의 환경미화원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나주시 공무원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지차남 의원이 ‘혐의없음’ 판결을 받은 데 반해, 나주시청 공무원을 포함한 4명이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 된 데 따른 책임을 물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1년 전 5분발언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의원실에 떼거리로 몰려가 항의한 당시 박○○ 부시장, 김□□ 총무국장, 정△△ 기획예산실장, 이◎ 소통실장, 그리고 의원의 고유한 권한인 의정활동을 빌미로 삼아 고발까지 했던 그들의 이름을 나주시의회 본회의 회의록에 남겨 단죄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로서는 자신들의 이마에 영원히 지어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판이니 기를 쓰고 막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김영덕 의장은 실수였든, 고의였든, 집행부 공무원들의 곤란한 상황을 모면케 해주려다 씻을 수 없는 실책을 남긴 셈이다.

어느 의회에서 의장이 동료의원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이미 서명까지 했던 발언을 넘겨버릴 것이며, 의원이 의장에게 사퇴하라며 천막농성을 할 것이며, 한참이나 나이 많은 연장자가 까마득한 후배에게 거의 욕지거리에 가까운 항의를 받는단 말인가.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 했으니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귀담아들을 일이다. 

이상만 의원이 평소 보여주었던 신사의 풍모를 지켰더라면 그의 분노가 시민사회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나주시의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거룩한 항거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런 수준의 의회를 가진 시민이라는 점에서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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