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

2007수필문학등단. 수필집 바람 속에 들다. 디카시집 절창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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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에 <동상이몽>을 띄어놓고, 사진의 풍경 속으로 시의 행간을 따라 걸어 들어가 본다. 배경 음악으로 캔자스(Kansas)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가 반복하여 흘러나온다.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집시 바이올린 선율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을 귀로 들려주는 듯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나를 흔들던 바람먼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디로든 훨훨 떠나고픈마음에 바람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답답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말했지만, 가슴속엔 늘 화려한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산비탈 자갈밭과 계단식 천수답에 뿌리내린 부모는 한 발짝도 고향 땅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저 민들레처럼! 척박한 땅에 납작 엎드려 손발이 부릅뜨고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한 가녀린 꽃대를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드디어 그해 봄날, 기다리던 바람에 몸을 싣고 드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비상(飛上/飛翔)이란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탱자나무 울타리 둘러친 비좁은 둥지 속 솜털을 벗고 이소(離巢)하던 날, 푸른 창공을 날 꿈에 깃털은 마냥 부풀어 올랐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도 높았다. 한때는 날개가 가자는 대로 하늘 끝까지 바람을 거슬러 가보기도 했지만,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길래 매일 새벽같이 둥지를 나섰다. 그러던 언제부터가 나보다 높은 곳에서 등을 노리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피해 낟가리를 더듬고 있었다. 둥지 속엔 먹이를 물고 오기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있었다. ! 날개란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임도 알게 되었다. 이젠 회색도시를 그만 떠돌고픈마음에 떠나온 고향을 떠올려 본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떨어진 깃털들이 바람에 뒹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인이 된 베이비부머 세대라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시인은 민들레 씨앗을 로 새 깃털을 로 지칭하고, “바람을 매개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이라 했지만, “라는 일인칭도 라는 이인칭도 결국 우리라는 복수 일인칭이고 보면, 우리는 각자의 꿈을 좇아 동상각몽을 꾼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우리 인생과 결부해 보면,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이소성(異所性)의 숙명을 타고난 민들레 씨앗이나, 세파에 부대끼며 그만 떠돌고파 마음의 둥지인 고향을 그리는 귀소성(歸巢性)의 새 깃털이나, 현재-이곳이 아닌 다른-그곳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동상동몽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석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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