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 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하게 꺼지려 하는데/

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두 눈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 말 잃어/

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

흑산도 아득한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속으로 가시나요"

(다산의 시 '율정별(栗亭別)

 

지금부터 222년 전 1801115.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두 형제가 귀양을 간다.

보름을 걸어 나주 인근 '율정점' 주막에 여장을 푼다.

다산 정약전과 형 손암 정약전이다.

날이 밝으면 동생은 영산강을 건너고 월출산을 넘어 강진으로, 형은 무안을 지나 흑산도로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이 날이 두 형제가 이승에서 본 마지막 밤이었다.

율정점(밤나무정, 나주시 대호동 984-3번지) 주막 터는 현재 동신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도로 100m 지점에 있었다.

세 갈래 길로 갈라져 있는 주막터 자리에는 간판만 세워져 있어 이곳이 율정점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율정점은 서울을 오가던 길목으로, 사람들이 술로 목을 축이던 주막이었던 것이다. 좀 더 도로를 따라 위쪽으로 가면 '정약용ㆍ약전 쉼터'도 있었다.

그런데 도로 공사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이 되면서 그 흔적이 사라져버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당시 세워졌던 입비석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6차선 확장으로 주변에 건물과 비석을 세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뒤로 뜻있는 시민들의 율정점 복원과 표지석 설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시 당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율정점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이미 뜻있는 문인들과 기자들이 율정점의 방치를 안타까워하는 글들이 많았다.

어느 언론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두 형제가 머물었던 이곳 율정점 주막도 강진 다산초당 만큼이나 역사가 깊을 텐데 왜 방치되고 있을까.“라는 안타까운 글을 만날 수 있었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에서도 율정점에 이별을 애처롭게 그렸다.

짙은 안개 속 길목에서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다 헤어진다.

그 둘이 짐작한 대로 정약전과 정약용은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이처럼 나주 율정점은 222년 전부터 이어진 깊고 슬픈 이별의 장소이다.

최근까지 이 오래된 그리움을 마주하러 나주를 찾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율정점의 흔적이라고는 마을주민이 만든 것 같은 율정별리란 팻말과 도로 표지판 율정교차로만 남았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취재하면서 나주 율정점이야말로 강진 다산초당보다 더 유서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고 관광상품화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사를 더 썼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꾸짖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흔적이 있어야 시선이 머문다.

시선이 머물러야 추억한다. 추억할 거리가 있어야 그리움이 생긴다.

이제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도 율정점을 그리워하지 못할 것이라 잘라 말한다.

코로나19로 갇혔던 전 국민들이 새로운 의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태세다.

'책상머리 행정' 말고 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을 원형 복원하고 컨덴츠를 확보해 선보인다면 의미있고 알찬 관광 코스가 될 것이다.

다산이 거쳐간 지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찾고, 관련 자료를 찾아 컨데츠화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계하여 역사관광문화 코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학자로 거듭난 다산과 손암 선생의 이별과 형제애는 지금도 심금을 울리고, 긴 여운을 주고 있다. 이미 영화 <자산어보>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하루 빨리 나주시와 나주시민들은 율정점의 표지석과 율정점을 원형에 입각하여 복원을 추진하는데 나서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지금 추진해야 한다.

▲김남철 이사/나주학회
▲김남철 이사/나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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