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논설위원

공자(公子)의 어록이라 할 수 있는 논어(論語) 양화편에, 향원(響原)은 덕을 도둑질 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 뒤 맹자(孟子)는 어떤 사람이 향원인가를 구체적으로 풀어 놓기를, 이상이 높아서 소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광(狂)이라고 칭 하고, 염치를 알아 언행을 가리는 사람은 견(?)이라 부르며, 광(狂)한 사람은 뜻만 높아 큰소리만 낸다며 희롱하고, 견(?)한 사람은 융통성이 없다고 비웃으며,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세상 흐르는 데로 음흉하게 시세에 아첨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부언 하자면 세상 살아가는 처세에 물불 가리지 않는 후안(厚顔)과 무치(無恥)에 능통한자 라 할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 사구(司寇 ) 즉, 지금의 법무부 장관으로 부임한지 7일 만에 대부 소정묘(少正卯)를 잡아 죽였다.

 정사를 돌보자마자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을 죽였으니 그 파장이 여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 했다.

 첫째, 남의 마음을 잘 읽어 마음에 들게 하지만 흑심을 품고 있는 자(一曰 心達而險).

 둘째, 행실이 편벽하면서 고집이 센 자(二曰 行?而堅),

셋째, 말에 진실성이 없으면서 달변인 자(三曰 言僞而辯).

넷째, 하는 일이 옳지 않으면서 지식이 많은 자(四曰 志遇而博).

다섯째, 비리에 순응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자(五曰 順非而澤),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만 지녀도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운데 소정묘는 다섯 가지의 죄를 모두 가진 자라 죽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세금으로 녹을 받아먹는 자나 불량한 사회운동가 또는 사업가 중, 공자의 법칙?으로 주살(誅殺)의 대상을 논하자면 여의도 면적의 만 배에 달하는 묘지터도 부족하리라 여긴다.

오늘 우리는 이 향원(響原)의 범주에 확실히 주목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무릇 정치인들이나 언론인 연 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슨 단체를 만들어 사회 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사람들, 각 종교의 지도자 등은 공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이유에 자신을 비추어 향원에 대한 진실한 경계가 필요하다.

 즉, 재주는 있으나 비속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어 당(黨)을 지어 그들만의 이익을 취해서는 사회악의 조장이기에 마땅히 배척되고 척결 되었을 때 사회는 바로 설 수 있지 않겠는가.

비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은 세상이라 해서, 남이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람의 정신마저 팔아먹어서는 안 되다는 의미도 있다. 한때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대중가요가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다.

여자에게 과거는 치명적? 결격사유가 될 수 있었던 시대에서는 물어서는 안 될 금기 사항이다.

그러나 사회에 여하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과거의 언행과 현재의 언행을 반드시 물어 사회 규범칙에 의해 옥석을 가려야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직진 할 수 있다는 나의 소신은 오늘도 유효하다.

똑 같은 자리나 그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나 있는 사람은, 이쁜 놈과 미운 놈에게 한결 같은 잣대가 필요 하다는 이야기다.

필자가 처음으로 나주시 의회의 시정 질문과 답변을 경청 하면서 과(過)와 실(失)의 주체에 따라 추궁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에서 향원이 불현듯 생각나는 것, 이것이 나주지역을 화합의 대동체로 만들지 못하는 우(愚)가 아닌가 한다

제도권에 안주하고 있는 인물들의 각성 없이는 화해나 화합은 말장난에 불과 하다는 말이다.

옳은 것은 반드시 신장(伸張) 되어져야하고, 그른 것은 마땅히 도려내져야 한다.

여기에 반대 하는 사람은 정상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과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신정훈 나주시장 재임 시, 우리 신문 당시 조성환 사회부장이 지역 기자를 대표로 해외 연수단에 포함 되어 여권 발급을 해당부서에서 종용?받던 중 실세(나주시장?)의 반대로 교체되는 비겁함에 왜 침묵했는지를 묻고 싶다.

또한 입은 삐뚤어 졌어도 촐래는 바로 불자고, 나주시가 이렇게 갈가리 찢기고 발겨진 윈인은, 나주시정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든 물건처럼 만지작거린 신정훈 나주시장에 대한 김첨복씨이나 김재식의 고소 고발이 아니라 자의든 타의든 범의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범죄자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성토해야지 도둑 잡자는 몽둥이를 비난해서야 어디 사회 정의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민선 3기 시작 초에 지금은 나주시 국장을 꿈꾸고 있는 위귀계씨를 업무협약이란 적법?을 들이밀어 함평으로 전보시킨 초유의 사태?에서도 침묵은 금(金)이 되었던 까닭을 바른 입으로 설명 되어져야 한다.

그 뒤 위귀계씨는 살아 돌아와 어째든 승승장구하여 대망(大望)의 위치에 있으니.., 시속(時俗)을 잘 타야만 만사형통이라 이것이 바로 공자가 경계로 삼았던 향원이 아니겠는가.

 우리 신문사에 놀라운 인재가 한 명 있다. 바로 서송성 기자인데 부임 첫 목소리가 향원이 되지 않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 이였다.

 나 또한 향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일삼성(一日三省)하지만 서송성 기자의 마음가짐이 용맹하다.

여기에 어떠한 위치에 있든 모든 사람들은 향원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다르더라도 옳은 것은 지지를 보내야 하고 그른 것은 지탄을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섬돌에 오동나무 잎이 뒹굴며 서럽게 눈물 흘리는 때, 사회와 사람을 위해서 고민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정치를 한다거나 사회 지도자 연 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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