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논설위원

지난 나주시의회 151회 임시회의에서의 시정 문답 중, 나주시 인사에 대한 적법과 불법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 그 결과에 따른 어느 일방의 피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 달았다.

논란의 핵심은, 불법적 인사위원회 개최라는 정찬걸 나주시의회 부의장의 지적에 대해 나주시가 조목조목 인사위원회의 의결은 원칙에 의한 적법한 조치라며 맞불을 놓자, 나주시인사행정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거짓과 참을 가리자며 맞장이라도 뜨자는 형국이다.

이에 나주시민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장 큰 내면의 이유는, 민선 2기 김대동 나주시장의 민선 3기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등 빛나는 전공을 세웠고, 민선 3기 그리고 4기에 중도 하차한 신정훈 나주시장체제의 든든한 버팀목 이였기 때문에 권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의 포석 또는 대리전이 아닌가 하는 대목이 관전 포인트에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나주시나 정찬걸 부의장이나 빼어든 칼을 이제 회수하기엔 출혈이 상당한 상황이라 어느 한 쪽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왜? 두려워해야 하는지 그리고 찬 서리와 엄동(嚴冬)이 엄습하는데도 송백(松柏)이 사시사철 푸른 이유를 고민 해 보아야 한다.

역사란 금세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고장 나서 고쳐 쓰는 물건 역시 아니다.

 망가지면 망가진 데로 계(誡)가 될 수 도 있고, 망각하면 금세 계(械 형틀)가 되어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고약한 심술도 있다. 하여 여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면경을 보듯 살피고 채찍질을 게으르지 않게 하여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음 없이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만 사람과 사회를 위한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나주시가 민선 4기에 치욕과 곤욕을 당 해야 했던 아픔의 가장 큰 원인은 고소 고발이 아니라 삼 부재(三 不在)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릇 여타 선거에서 시민들의 의식 부재가 일 부재(一 不在)요,

나주시를 감시해야 할 나주시의회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의원들의 자질 부재가 이 부재(二 不在)요,

 마지막 삼 부재(三 不在)는 힘 있는 자들의 염치의 부재라 할 것이다.

당시 공산화훼수출단지 사기사건의 핵심부서인 농촌기술센터소장의 인사보직은 직렬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라는 감사원 지적 사항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큰 문제를 제기한 시의원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나주시의 불행은 여기에서부터 잉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산 화훼단지와 버금갔던 문제의 산포 육가공 업체(미트백)부실 사업의 당시 실무자가 지금은 나주시 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유구가 무언이다.

 하기야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속언처럼 정법(正法)이 아닌 사법(邪法)이 판을 거나하게 벌려도 묵언(?言)이 금(金)되는 염치 부재의 사회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혼란이 가중이다.

검려지기(黔驢之技)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글자 되로 풀자면 검(黔)지방에 사는 당나귀의 보잘 것 없는 기술이란 뜻이다.

중국 검주(黔州)에는 노새(驪당나귀)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노새를 사다 길렀는데 이 노새가 밤 세 울자 처음 듣는 울음에 놀란 호랑이가 주위를 빙빙 돌며 동태를 살피던 중 가진 것이라고는 보잘 것 없는 뒷발 질 뿐이니 그 기량이 몇 쪼금 가겠는가? 결국 호랑이 밥이 된 노새의 신세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정치인 연 하는 사람들은 가슴에 깊이를 더 할 일이다.

부언 하자면 민중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 일순 속이기는 쉬우나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간단명료한 역사의 증명은 시차만 좀 있을 뿐 언제나 틀리지 않았음에서 자신에게 철저할 확실한 필요가 반드시 있다.

 또한 정치(征治)가 아닌 정치(正治)를 하겠다면 현명한 부부싸움처럼 퇴로를 확보해 주는, 소통을 준비하기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지방 자치 판은 권력이나 정권을 잡기위해 너 죽고 나 살자는 판이 아니며, 사람과 사회의 밑뿌리를 가다듬고 만들어 가는, 공통 모범 답안을 머리 맞대고 풀어 가는 공간이다.

수심수정(水心邃靜)이라고 물은 깊을수록 고요하다고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과 대비되는 말이기도 하다.

참은 고요 하지만 거짓은 그 구조가 요란스럽다.

교언영색(巧言令色) 즉,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에는 어짐(仁)이 없다는 공자의 말씀은 참이다.

이 가을에 성찰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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