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조성환

태조와 무학대사의 친분을 기록한 ‘석왕사기’란 책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어느 봄날 두 사람이 차를 마시던 중 태조가 “누가 농담을 잘하나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단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태조에게 먼저 하기를 권했다.

이에 태조는 대뜸 “내가보니, 대사는 똥 냄새를 맡은 굶주린 개 같이 생겼소”라고 말했단다.

이를 받은 무학대사는 “제가 보니 대왕께서는 영산회상에 앉아 계신 부처님 같습니다”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태조는 정색을 하며 “아니 농담을 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민망하지 않소이까.”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무학대사는 천연스럽게 “본래 개의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라고 하자 서로 손뼉을 치며 껄껄 웃었다는 얘기다.

‘석왕사기’란 책에는 이 태조와 무학대사간에 오간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개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얘기가 아주 많이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한 말 중에 또 이러한 말도 있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안다”는 격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항상 자기 중심점에 서서 사물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사회는 그래서, 항상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게 되며, 그 다양한 의견 속에서 더 나은 의견을 찾아내는 과정이 사회발전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과 같이 ‘1+1=2’라는 정해진 답도 없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의 논쟁은 필연적이다.

곧 논쟁은 사회발전을 이끄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다양한 각 개인의 생각들이 논쟁을 통해 걸러지면서 그 사회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논쟁의 장(場)에는 꼭 훼방꾼들이 있다.

그 훼방꾼들은 그 논쟁의 주제 속에 담긴 속뜻도 이해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해결하려 든다.

그러면서 주제의 방향을 바꾸어 놓아 버리는 것이 이들 훼방꾼들이다.

이럴 때는 참 고약스럽다. 그렇다고 논쟁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논쟁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에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 따르기 때문에 자칫 감정적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정확한 논리를 앞세워야 한다. 특히, ‘논쟁의 장(場)’이 인신공격성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대체적으로 논쟁의 장(場)에 나가보면 그 장(場)에 나서야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나서서 꼭 그 장(場)을 망쳐버리는 꼴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항상, 논쟁의 장(場)에는 그 주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논쟁을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탁상공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접했던 이론 중에 ‘스키마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배경지식 이론’이라고도 한다.

이는 곧 “자신이 어떠한 지식을 많이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똑 같은 내용이지만 사물을 보는 깊이와 해석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건전한 논쟁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의 배경지식을 높여보는 것이 어떨런지 독자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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