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과 꽃이 노루의 발처럼 동그란 오줌내기약…노루발풀(鹿蹄草)

▲ 노루발풀
한식일 성묫길은 응달에 눈이 남아있는 일이 흔하다. 세상이 온통 갈빛으로 가라앉고 초록이 귀한 때 춘란과 함께 눈덩이를 머리에 인 채 당당히 겨울 숲의 한 모서리를 지키고 있는 풀이 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사람도 문득 반가워 걸음이 멈춰지는『노루발풀』이다.

겨울에 푸르러서 ‘동록(冬綠)’이라고도 하는 노루발풀은 잎이 노루의 발굽과 비슷하다거나(鹿蹄草:약명), 꽃송이도 노루의 발자국처럼 작고 동글동글하다거나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필자는 아무래도 노루가 서식하는 낮은 산기슭에 흔해 ‘가난한 노루의 발길을 불러내는 풀’이라는 상상이 앞서곤 했다. 동속의 식물로는 백두산에서 자라는「홀꽃노루발풀」과 중부 이북지방에서 자라는「매화노루발풀」이 있다.

『노루발풀』의 뿌리줄기는 부엽토 속을 얕게 기어 군데군데 새 순을 올리는데, 유월이 다가오면 약 20cm의 꽃줄기에 5~10송이의 흰 꽃을 피워 환하게 화등잔(火燈盞)을 밝힌다.

꽃의 자태가 참 고아 낮은 분에 심어 가까이 눈썹 위로 올려놓고 싶은 들꽃이다. 그러나 노루발풀은 털뿌리가 발달하지 않고 곰팡이류와 공생하여 영양을 취하는 균근식물이므로 옮겨 심으면 살리기가 쉽지 않다.

꽤 오래 전 나주 남평장에서 노루발풀을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 이 약초 이름이 뭐요?” 했더니 “녹음방초라우” 하였고 “어디에 좋다요?” 물었더니 “소변 볼 때 좋고 달거리 헐 때 좋고 감기에도 좋다요.” 하셨다. 

『노루발풀』은 간, 비, 신으로 귀경하여 이뇨, 진통, 해열, 보신, 소염 등의 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의 약사노름이 틀리지 않았다. 다만 ‘녹음방초(綠陰芳草: 잎이 푸르게 우거진 숲과 향기로운 풀)’는  녹제초의 ‘녹’ 자나 노루의 ‘노’ 자 그리고 ‘사철 푸른 풀’의 합성이미지로 얼렁뚱땅 끌어쓴듯하여 웃음이 나왔다.

갓 나온 죽순은 누런 송아지의 뿔이요(竹筍初生黃犢角)
벌써 팬 고사리순은 어린아이 주먹이로다(蕨芽已作小兒拳)
《백련초해(百聯抄解)》

옛 사람들이 일러주는 초명(草名) 속에는 이렇듯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유의 회화적인 묘사가 많다. 필자가 화순에 새로 집터를 닦다가 쌓인 눈 위로, 그리고 이른 봄 콩고물처럼 보드라운 땅거죽 위로 콩콩 찍은 노루의 발 도장을 보면서 이 풀의 유래를 실감했다. 

조선조 광해군 때의 학자 유몽인(柳夢寅)의《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아래 구절은 시적 여운이 여간 아니다. 채수(蔡壽)라는 사람이 다섯 살 손자인 무일(無逸)을 등에 업고 주고받은 운(韻)이다.

강아지 달려가니 매화꽃 떨어지고(拘走梅花落)
닭이 걸어가니 댓잎이 피는구나(鷄行竹葉成) 

 

유월이 다가오면 약 20cm의 꽃줄기에 5~10송이의 흰 꽃을 피워 환하게 화등잔(火燈盞)을 밝히는 노루발풀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