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조성환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67년도 1월, 현실참여적인 신동엽시인이 발표한 시(詩), ‘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분이다.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거짓, 위선, 허세이다.

시인은, 껍데기는 내 팽개치고 ‘알맹이’인 순수하고 정의롭고 바람직한 것을 이 땅위에 남겨야지만 순수한 염원의 세계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신동엽시인이 이 시를 발표할 당시 만해도 이 나라는 격동의 시대였다.

6,25전쟁을 거쳐 4,19혁명, 5,16군사쿠데타와 함께 이어진 독재권력 등.

현실 참여적이었던 시인의 눈에는 그러한 역사적으로 잘못된 과정 등이 계속해서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껍데기’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시(詩)에서 ‘껍데기는 가라’를 6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땅위에 과연 ‘껍데기’들은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았는가?

아직도‘알맹이’보다‘껍데기’들이 더욱 판을 치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90년대 초에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되면서 모든 권력이 중앙집권에서 지방으로 분산됐다.

그래서 이제는 각 시·군·구마다 그 지역에 따라 예전과 다른 거대 권력이 존재한다.

약간 뻥을 곁들인다면 지역에서의 그 권력은 대통령과도 맞먹는 권력이다.

그래서 그 권력근처에는 항상 ‘껍데기’들이 달라붙는다.

껍데기들이 그 사회의 주도층을 형성하는 사회는 비젼이 없다.

한마디로 그들은 ‘껍데기’를 둘러 쓴 ‘밥풀떼기’들이다.

항상, 이 권력, 저 권력 기웃거리며 잇권만 찾아 착 달라붙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껍데기를 둘러 쓴, ‘~인 체’ 하는 사람들과 같다.

‘알맹이’가 무엇인지 조차 생각하려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잇권이나 영역을 침범해 오면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어 버리는 게 이들의 습성이다.

합리성도 없고 공평성도 없다. 무엇이 의무인지조차도 모르고 오직 권리만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만‘껍데기’로 자기 포장을 하는 데는 아주 수준급이다.

더욱이 높은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가져야 될 집단이나 사람이 이 같은 ‘껍데기’를 둘서쓰고 있다면 그 사회는 비젼도 없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회는 ‘알맹이’가 그렇게도 중요하다.

그 사회발전 가능성의 척도는 ‘껍데기’와‘~인체’보다는 ‘알맹이’가 더욱 많은 세상이,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발전의 진행속도가 아주 빠르다.

그래서 그 사회의 ‘껍데기’나 ‘밥풀떼기’‘~인체 하는 것’은 모두 보따리로 싸서 내던져버려야 한다.
알맹이’들이 숨 쉴 수 있도록.

40년 전, 신동엽 시인은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도 껍데기들이 거리낌 없이 활보하는 우리사회를 보았기 때문에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 곧 껍데기는 가라.”했다.

이제 우리도 그동안 ‘밥풀떼기’나 ‘~인체’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고만 생각했던 ‘껍데기’를 이제 서로 띄어 놓아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도 껍데기를 가려내어 저 멀리 던져버리자.

속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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