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맛은 추워야 제 맛이지만 유난히 추웠던 추위 속에서 우리의 일상을 피곤하게 하기도 하는 삶이 계속되는 지난 1월 말 가까우면서도 생소하기만 했던 대마도(對馬島)답사를 대학원 동창들과 함께 다녀왔다.

대마도는 애초에 우리 땅 아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일본은 어떻게 해서 실효지배하게 되었던 것인가?

독도문제와 함께 조금은 궁금했었는데 수박겉핥기식의 여행이었지만 지엽적이나마 알 수 있었던 귀한 여행길이었다.

대마도는 지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미 동백꽃은 피고 지고 있었고 벚꽃 중에서 제일 푸짐하고 아름다운 수양버들 벚꽃이 움이 터트려지는 가지를 보면서 이제 얼어붙었던 동토는 새봄의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입춘이 지나가는 길목의 한적한 섬에서 오는 새봄의 기운이 우리를 설fp게 하고 있었다.

제주도 40%면적의 대마도는 애초에 버려진 섬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空島)였단다.

죄를 짓고 일본본토에서 살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던 곳으로 일본이 대륙 침략전진기지로 실효 지배되어 지금에 이르렀단다.

부산에서 49.5km 떨어진 가까운 섬 대마도는 태초에는 부산과 접경되어 지각변동으로 그 사이가 내려 앉아 지금은 바다길이 되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대마도와 일본본토의 규슈의 후꾸오까와는 134.5km나 되어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의 척박한 섬이었기에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노략질하며 침략해 왔었다.

그래서 신안군 영산도의 주민들이 내륙으로 소개되어 내가 사는 영산포에 들어왔다는 역사를 보더라도 왜구는 우리의 해안지방을 약탈해 가는 진원지가 대마도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직위 후, 곧바로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징벌하고 경상도에 편입시켰으나 29개의 섬으로 둘려져 있어 결국 사람이 살수가 없어 실효 지배를 못하고 버려놓은 섬이었었다.

그때 실효지배 하지 못한 까닭에 일본 땅이 되고 침략의 전진기지가 되는 한 맺힌 역사가 되었으니 이 또한 아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 후 화의로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식량을 원조받아 살았던 땅이 대마도 원주민의 삶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로 밀수의 전원지이기도 했던 대마도는 성시를 이뤄 한때 7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나가사끼 현에 속한 3만4천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얼마나 밀수가 활황을 이루었으면 부두 정면과 뒷거리에 요정이 즐비하고 술집이 뒷 골목길을 가득 들어차 있어 찬란했던 밀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마주보는 말을 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상대마, 하대마로 둘로 나뉘어져있어 대마도라 불리워졌으나 원래는 연결되어 있어 협곡을 파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하기위해 운하를 만들었다.

만관교(万關橋)에서 바다를 보면서 그들의 대륙침락을 위한 준비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승만 정권시 NLL선이 대마도 밑에 그어져 있었으나 박정희 정권시 대일 청구권 협상시 대마도위로 NLL선이 그어져 버려 일본은 이제 독도를 핫이슈하고 있으니 우리의 부족한 국익 외교정책이 개탄(慨嘆) 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그 척박한 땅에 삼나무, 편백나무를 빽빽이 심어 한그루에 10만원 가는 아름드리 나무가 전체 산의 88%가 식재되어 있어 부럽기가 그지없었다.

동양의 리아스식 섬 사이에 바다물이 훤히 비치는 코발트색의 청정해역으로 사람의 때가 묻어있지 않게 잘 보존 되어 있어 보기도 좋았다.

일본의 애도시대 1607-1811년까지 12차례 문물을 전래했던 조선통신사가 제일 처음 도착한곳이 대마도여서 우리에게는 많은 아픔과 눈물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처음 3회는 국서에 대한 회답사였으나 9차례는 임진왜란시 포로로 잡힌 조선인의 귀환 통신사였으니 처음의 문화를 전달하는 영광스러운 역사가 아니리 치욕의 사절이었기에 더욱더 아픔이 서려있었다

일본과 강화조약을 적극 반대했던 최익현선생의 유배지로 억울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선사(水善寺)의 비석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 후 100년 후, 국치의 한일합방의 치욕의 역사가 전개되었으니 역사는 힘있는 자의 것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조선의 마지막 황여 덕혜옹주가 볼모로 잡혀와 대마도 도주의 후예인 종 무지(宗 武志)에게 정략 결혼한 비운의 역사의 흔적을 보게되어 내내 즐겁지만은 안았다.

그러나 대마도는 분명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 땅이 되었어야할 섬이었기에 뒤돌아서는 발길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로인해 우리 땅 독도마저도 일본이 넘보고 있으니 어이 통탄(痛嘆)스럽다 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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