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정 대표
정월그믐장을 끝으로 장 담그기가 마무리되는 요즘입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우리집 항아리를 보고 다들 속엔 무엇이 담겨있나 이 항아리 뚜껑도 열어보고 싶고 저것도 열어보고 싶다 하시며 궁금해 하십니다.

장담그기 삼일전부터 예전엔 음기가 발산되지 않도록 입수건을 하고 목욕제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큰 일이니만큼 장독대 뚜껑도 주인의 허락없이는 못열게 하고 부정탄다 하여 금줄을 걸어놓기도 하지만 항아리 속 사정이 궁금하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아리가 많으니 맛있는 된장 간장은 커다랗고 좋은 항아리에서 나오리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을 합니다.
작년 된장을 맛보신 분들이 이 된장은 어떤 항아리에서 익었을까 궁금해하시니 제가 우리 어머님의 항아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예전에 시할머님이 자수성가해서 이룬 큰 살림을 하실 때 며느리였던 우리 어머님은 시어머님 밑에서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우셨을까요.

그때는 그릇이나 옹기를 파는 장수들이 마을마다 지게에 지고 걸어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나중에 쌀로 수금을 해가는 시절이었는데어머님이 가격을 깎느라 품질이 떨어진 항아리를 사셨답니다.

그래서 그 항아리는 된장을 풀때마다 이쪽 저쪽으로 기우뚱거립니다 .

항아리가 기우뚱거리면 어머님은 “내가 쌀 됫박 애낄라다가 고런 항아리를 샀다.”하시면서 웃으십니다 .

저는 그런 어머님에게서 지나간 세월의 흔적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수십년에걸친 우리 어머님들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고 숙연해집니다 .

된장사업을 시작할 때 항아리를 구입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난무하는 저급 수입산과 기계로 찍어내는 항아리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물레에서 손으로 직접 빚은 항아리에 상호를 써넣고 무늬도 다르게 넣고 유약과항아리 굽는 온도도 체크하며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 가져온 항아리는 너무나 흡족하고 보는 분들도 예쁘다고 칭찬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기우뚱거리고 색도 제맘대로인 우리 어머님의 된장간장 항아리가 제가 물려가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이제 매일 아침이면 장독뚜껑을 열고 닦은 후에 바람과 햇빛에 우리 항아리들의 운명을 맡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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