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용산동 한숙 씨, “스스로 커가는 아이들 안쓰러우면서도 대견”

▲“오늘 살아가는 것이 다소 불편해도 내일에 대한 꿈과 믿음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한숙 씨. 그녀에게 삶의 원천은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따라주는 세 아들과 딸이다.

꿈 많은 여고시절을 마치고 잘 나가는 전자회사에 취직해 ‘짠순이’ 소리를 들어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 4천5백만원.

결혼자금이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가 자금난으로 허덕이는 회사 사장에게 “곧 갚는다”는 약속을 받고 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생을 바꿔놓는 ‘덫’이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는 한숙(38·나주시 용산동)씨.

한 씨는 철썩 같이 믿었던 사장이 돈을 갚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자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포기할 수도 없어 매달리다 결국 사장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어찌된 영문인지 주민등록이 말소 돼 자신의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다. 

회사운영과 금융거래, 자동차 구입, 휴대폰 개통까지 모든 명의를 부인이름으로 했고, 친정집을 담보로 빚을 낼 때도 친정집 부모의 이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이후 세 남매와 빚을 안고 세상에 남겨진 한숙 씨.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큰아들 창호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고, 둘째딸 하영이가 5학년, 막둥이 성호도 어엿한 4학년이다.

한 씨는 마냥 원망과 시름에 잠겨있을 수 없어 늦깎이로 나주대학 야간을 다니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이창어린이집 자활도우미로 7년째 일해 오다 올해 1월부터 나주시노인복지관 주방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복지관에 오시는 어르신들께 한 끼 점심식사가 아니라 따끈한 '진지'를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처음엔 제 형편이 너무 궁색하다보니 웃음 한 번 웃어드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르신들께 웃으며 인사도 드리고 안부도 묻고 하면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이곳에서 한 달에 받는 월급이 75만원,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급되는 생계비 75만원이 네 식구가 살아가는 한 달 소득의 전부다.

퇴근하고 틈틈이 식당일까지 해야 하는 한 씨는 애들을 돌볼 수 없어서 학교 끝나면 학원을 보내고 있다.

“스포츠바우처카드가 있어서 무료로 태권도학원을 보내고, 또 원장님의 배려로 한 아이 수강료만 받고 세 아이가 보습학원을 다닙니다. 또 나주시에서 운영하는 드림센터에서 현장학습이며, 예방접종까지 꼼꼼히 챙겨주고 있고, 얼마전에는 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무료쿠폰까지 보내주어서 이런 도움들이 저희 가족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있죠.”

 남들처럼 단란한 가정은 아니지만 이들 가정에도 꿈과 희망이 있다. 큰아들 창호는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곧잘 할 뿐만 아니라 육상이며, 축구, 야구를 잘 해 ‘날다람쥐’로 불리고 있다.

고명딸 하영이는 태권도를 잘 해 경찰대학을 가겠다는 꿈이 있고, 막둥이 성호는 ‘오늘도 무사히’ 사고 없이 넘어가주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얼마전 창호의 담임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창호의 가장 큰 소망이 ‘엄마 호강시켜 주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한숙 씨는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과 함께 뿌듯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고. 

 “오늘은 살아가는 것이 다소 불편해도 내일에 대한 꿈과 믿음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한 씨는 그 특유의 밝고 시원스러운 웃음으로 내일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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