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지도자 이순신의 12공방 전통 오늘의 공예도시로 우뚝 서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는 특산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체험활동을 곁들여 도시민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형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서는 삭막한 도시공간을 문화와 건강한 삶이 어울리는 공동체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업이 한창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1일부터 나흘 동안 전국의 지역일간지와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콘텐츠 현장탐방-장인(匠人)과 지역문화’ 연수를 실시했다. 경남 통영시가 추진하고 있는 ‘통영 12공방 원류 지키기’ 노력은 문학과 예술, 전통공예로 이어지는 통영의 무한한 가치이자 미래의 자산이 되고 있다.도시 전체가 ‘꼭 가보고 싶은 꿈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남해의 작은 도시 통영의 장인들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남해의 작은 도시 통영의 창조적 인물들

 크고 작은 섬들이 이어지는 남해 연안의 작은 도시 통영, 인구 13만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도시에서 박경리(1926~2008)가 태어나고, 유치환(1908~1967), 김춘수(1922~2004), 윤이상(1917~1995), 전혁림 같은 우리나라 근대예술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고 자랐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송장웅, 두석장 김극천, 염장 조대용, 갓일장 정춘모 등 전통공예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400여 년 전,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했던 때부터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통영 12공방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12공방은 군영에서 사용할 군수품은 물론 진상품과 공물까지 생산해 조달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런 공방활동이 자연스럽게 민간에 흡수되면서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통영이라는 이름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전통공예는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개와 칠로 멋을 낸 기물인 ‘나전칠기’를 생각하게 될 테지만 통영갓, 통영비연, 통영소반, 통영누비, 통영대발 등 통영의 이름을 건 전국 최고 수준의 공예품들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고속도로로 네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남쪽의 이 작은 도시에 수많은 명장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점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전통공예가 사양길에 접어든 시대에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경남 최고장인들이 포진돼 고집스럽게 ‘12공방’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옹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으로 지정돼 한국 나전칠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송방웅 장인.

 송방웅 장인은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이수자들과 함께 왕성한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송 장인의 작품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나전칠기 끊음질 기법을 적용해 나무와 와태, 가죽, 대나무 등 기물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배치, 금속의 강렬함과 자개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물건이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이에 대해 사치품이라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장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송방웅 옹의 얘기다.
“우리 국민들이 인식을 잘 못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전장을 고가품이다, 사치품이다 하는 이런 인식. 고가품·사치품이기 이전에 문화재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두석장은 주석, 방짜, 백동 등의 합금금속을 재료로 목공예품에 부착하는 장석을 재래식 기법으로 제작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두석은 가구의 이음새를 견고하게 해 여닫이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적인 목적이 우선이겠지만, 모양과 문양을 적절히 표현해 가구전체의 조형감을 살려 더욱 품격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5대째 두석을 만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장인과 김대홍 두석장의 손에서 태어난 장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염장 조대용
 전통 한옥에서의 필수품인 ‘발’을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장인. 통영대발의 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부친 조재규 선생으로부터 소일 삼아 발 엮는 것을 보면서 몸에 익혔다.
일반 대나무 발보다 가늘고 섬세한 통영대발. 180cm 정도의 크기를 하나 엮는데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그 지루한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고 인내하는 장인의 정성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들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전통의 단절이다. 조대용 장인은 “인간문화재라고 지정을 받다 보니까 사명감을 갖게 되지만 전승을 해야 되는데 전승할 상대가 없어서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조교 김금철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조교 김금철
 나무가 지닌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짜 맞추는 소목장 김금철 씨. 통영시 무전동에 자리 잡은 소목장 공방에는 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조교인 김금철 씨의 사포질이 한창이었다.
7년 전 소목장 기능보유자인 스승 천상원 선생이 돌아가시고 혼자 쓸쓸히 공방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한 두 개씩 팔리던 소목장도 이제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스승인 천상원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거의 한 달에 인터넷으로 한 두 개 나가는 걸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데, 만드는 건 보람이 있지만 물건이 빨리 안 팔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어렵다는 얘기다.

먼지와 소음 속에 청각을 잃은 섭패장 이금동 

▲섭패장 이금동 장인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전수자들에게 지원되는 비용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수교육장의 확대, 공예단지 같은 상품판매 인프라구축과 전통문화의 관광자원화와 현대에 맞는 상품개발 같은 다양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바닷가 한 슬라브주택 옥상에 작업장을 만들어 나전칠기의 주재료인 조개껍데기를 정밀하게 가공해 자개를 만드는 섭패장 이금동 장인. 그는 통영 유일의 전통자개 가공자이지만 그 험한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업장의 심한 소음으로 그는 난청을 앓고 있고, 먼지는 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자개만큼은 세계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다는 자부심이 오늘의 그를 통영의 한 인물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명성 보다 실리 좇는 현대인, 통영시의 선택은?

이처럼 통영의 전통장인들에게 주어지는 호칭은 중요무형문화재, 즉 인간문화재라는 자랑스런 호칭이 주어지지만 경제적인 삶과 생활은 별개가 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술을 전공하고 취미로 이것저것 배워보려고 하는 청년들이 있을지 몰라도, 이것을 업으로 삼고 배우려는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주소다.

 이에 따라 통영시는 전통공예를 재조명하고 이를 발전시키고자 2011년 5월 지역발전추진단에 전통공예육성팀을 조직하는 한편, 정부가 지원하는 향토핵심자원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는 등 나전칠기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생산기반 조성 및 인력 양성, 홍보마케팅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과 통영전통공예관 두 곳에는 장인들이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고, 통영전통공예관에는 전시공간과 아트샵 등을 따로 마련하고, 일반인 대상 교육과 체험프로그램 등도 마련해 관람객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펼치는 ‘지역공예마을육성 시범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브랜드화와 상품개발, 해외교류 및 사업홍보 등의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등 안팎으로 전통공예의 틀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전통공예문화를 충실하게 보존·육성하고 있는 바다의 땅 통영. 이제는  한국공예의 메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와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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