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을 재건한 전라도 민중

▲김창원 주필
일본을 서양제국과 대등한 반열로 올려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해군제독은 러일전쟁 승전축하연에서 신문기자가 도고제독을 영국의 넬슨제독과 이순신제독에 비견(比肩)하자 즉각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이순신제독은 전쟁에 관한 한 신(神)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나를 이순신장군에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이순신장군이 개발한 학익진(鶴翼陣)전법을 근대 일본해군은 정(丁)자 타법으로 정리하는데, 도고는 이 정자 타법으로 세계최강의 러시아함대를 단숨에 격파해 버린 장본인이다.

정자타법은 함대가 적 함대를 공격하는 순간 배를 90도 돌려서 측면의 함포로 공격하는 전술이다.

측면의 함포수가 전면보다 10배 많아서 10배의 화력으로 집중포화를 퍼부어 적함을 격침시키는 것이다.
이순신을 연구하고 존경했던 도고제독은 정자타법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 뿐 아니라 도고제독이 이순신을 신으로 까지 숭상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장기간의 전쟁에서 전쟁 물자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전쟁을 치룬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전쟁초기에는 일 년 이상 평시에 전쟁준비를 하였으나 명량해전을 마친 이순신함대는 다음 전투를 준비할 수군기지가 없었다.

병력과 군량미도 태부족이고 전함과 화약, 피사체등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했다.

막강한 적을 코앞에 두고 곤란에 빠진 이순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피난 나온 전라도 민중들이었다.

‘난중일기초(亂中日記抄) 9월14일편에 의하면 이순신은 전투가 명량해전이 임박하자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 그곳에 모여든 100여척의 피난선을 떠나도록 한다.

그러자 이 피난민들은 떠나기를 거부하고 이순신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 의병(疑兵)을 조직해 의병선을 띄우고, 나머지는 산에 올라 명량해전을 관전하며 응원했다.

전라도민중들은 별난 사람들이다. 프로야구를 관전하는 것도 아니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를 비무장 민간인들이 가까이서 함성을 지르며 전투장면을 관전하는 사태는 세계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 숫자가 4천여명이 되는데 날이 갈수록 불어난다.

이들은 종전 때까지 이순신함대와 생사를 같이하면서 수군에 편입되기도하고 여러 가지 전쟁지원업무에 종사한다.

9월 16일 명량해전을 마친 이순신함대는 그날 저녁 바로 암태도까지 물러난 뒤, 10월 29일까지 41일 동안 서남해도서지방을 순시하다가 영산강입구인 보화도(寶花島, 목포시 고하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다.

다음해 봄 2월 18일, 수영을 고금도로 옮길 때까지 108일 동안 전함 29척을 새로 건조하여 총 42척을 갖춘 해상정규전을 감당할 수 있는 함대로 재건된다. 기적을 이룬 것이다.

병력은 전라도민중들의 열정으로 채운다 하더라도 전함건조, 화포제작, 화약제조, 각종 피사체제작에는 막대한 전비가 소요된다.

이를 위해 13개의 염전을 운영하여 생산한 소금을 판매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서남해를 운항하는 선박에게 통행첩(通行帖)을 발급하면서 쌀을 거둬들인다. 대선은 3섬, 중선은 2섬, 소선은 1섬을 받았다.
1

598년 2월 18일, 불과 108일 만에 전라도민중들의 뜨거운 후원으로 이순신의 전라도함대는 정규전 능력을 갖춘 판옥선 42척에 수군 8000명, 군량미 2만을 갖추게 된다.

곧바로 이후 완도 고금도로 수영을 이동시킨다.

이순신은 수군기지를 보화도에서 고금도로 140km 전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계를 조정에 보낸다.
‘---소서행장이 주둔하는 예교(曳橋, 순천의 일본군 기지)에 적의 병력이 증강되는데도 불구하고 조선 수군

이 멀리 나주 땅 보화도에 있으므로 적이 마음놓고 순천, 고흥 앞바다를 침범하고 있으니 분하다.

봄이 되었으니 날뛰는 적을 섬멸해야 한다.’

이듬해 7월 16일 원균함대가 일본수군에 궤멸된 후, 계속 수세에 몰리던 조선수군이 이제 전력을 증강시켜 수영을 보화도에서 고금도로 전진배치하면서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전남타임스 후원

저작권자 © 전남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