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를 삶으며

아침에 일어나보니 대문앞에 고구마 줄기가 한 자루나 있습니다.

 연로하신 시부모님께서 늘 바쁜 자식 걱정에 새벽 일찍 밭에서 뜯어다가 두시고 가신 모양입니다. 말리는 용도로 삶을 때는 줄기만 필요하니 국거리로 연한 잎은 따로 작은 봉투에 두시고 가시니 농사일이 서툴러  죄송한 마음입니다.

 큰 솥에 물 안치고 한여름에 장작불 때서 고구마 줄기를 삶다보니 어려서 먹던 우리 엄마만의 특별한 도시락 반찬이 생각나서 저도 따라서 해봅니다.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 때의 그 설레임은 아마 지금 급식을 제공받는 아이들은 알지 못할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밀폐도시락 뚜껑등의 편리한 기능들이 나오기 전의 세상을 살아봤기에 김치국물이 흘러서 책에 묻었을때의 낭패감이라던가, 걸을때 빈 도시락 속에 넣어둔  숟가락의 달그락거림이 주던 창피함 같은 것도 이제는 향수가 되어버렸네요.

 도시락에 김치는 필수지만 국물이 흐르는게 너무 싫어서 우리 형제들은 엄마가 그 반찬을 싸주던 날을 가장 좋아했답니다 . 우리 엄마만의 그 특별한 도시락 반찬은 바로 삶아 말린 고구마잎부각이라고 이름붙여야 할거 같네요.
 

 고구마의 잎만 삶아서 그늘에 잘 말리면 이게 쪼그라 붙은 모양이 영락없이 미역귀처럼 보입니다 . 이걸 기름에 살짝 볶아서 소금 설탕을 뿌리면 꽤나 근사한 반찬이 되지요.

 미역귀 부각과 맛은 비슷하지만 더 부드럽고..하여튼 어린 날에  짝꿍이나 앞,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던 그 반찬을 이제 만들어 볼까 합니다.

 엄마가 우리도 몰랐던 혈압으로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막내동생이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조문을 왔는데 상을 들고 가서 같이 음식을 먹기도 하고 웃으며 대화도 하던 철없던 모습에 더 슬펐던 기억과 너무나 급작스런 이별에
 

 그 후로 우리 형제들은  약속처럼 엄마 이야기는 제삿날에도 하지 않는 묘한 습관이 생겨버렸지요.
20여년이 지나버렸네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처럼 서서히 옛 엄마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막내가 그 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정신을 못차릴거 같은 상황에서 가장 먼저
 이제 도시락은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삶은 고구마잎을 널고 왔습니다 . 이 고구마잎부각이 완성되면 형제간들에게 무엇이라 말하지 않고 먹여보고 싶네요.
 

 아~! 이거 옛날에 엄마가 해주던건데!!

 누군가 기억해 낸다면 슬프게 행복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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