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후보 정치인들 철학인이 되어라!

/임준선 논설위원
선거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 권력은 인간에 있어서 무엇을 뜻하느냐는 것이며, 그와 아울러 생각키는 것은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재에서 금력(金力)은 또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을 뜻하느냐는 것이다.

예로부너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를 보면 권력과 금력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조건으로 되어 있다.
 

부귀영화라는 말이 권력과 금력을 아울러 소유한 상태를 뜻한다.

흔히 한자리 했느니, 한 밑천 잡았느니 하는 것은 웬만큼 권력을 잡았거나, 금력을 가지게 된것을 표현하는 말로서 오히려 학문적인 개념 규정보다 세속의 권력과 금력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 많은 정치(국회, 시장)인이면 권력과 금력을 아울러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금력이 따르고 금력을 가진 사람에게 정치적 권력이 따르게 마련인 것도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권력과 금력의 상관 관계이다.

그런데 어떤 사회에서나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 권력과 금력이란 것이어서, 그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과 금력은 양쪽에 날을 가진 칼이나 다름 없어서 그것을 좋은 일에 옳게 쓰면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나쁜일에 그릇되게 쓰면 증오와 멸시를 면치 못하게 된다.

나주 역사는 아직도 후자의 경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력과 권력이 남용되는 수가 많다고 하여 아예 그 자채를 배격하거나 기피하는 것은 잘 못이다.

그런 극단적인 의견이 이데올로기화하여 그것이 실험된 적이 없지 않았으나 실패로 돌아 갔거나, 보다 더 참담한 상황을 전개시킨 젓은 금력과 권력에 대한 추구와 소망이 인간이 지니는 중요한 속성의 하나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근래 되도록 권력과 금력을 분산하는 방법이 취해져서 웬만큼 효과를 거두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여전히 권력과 금력은 그 성격상 소수에 치우치고 있어서 바람직스러운 것은 정치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양심과 양식을 가지고 그 힘을 옳은 일에 쓰는 동시에 남용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일 일것이다.

나주 정치인들에게 선거때면 하는 말에, 투표 전에는 양같이 겸손하다가도 당선만 되면 사자처럼 거만해진다. 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맹랑한 이야기라고만 치워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주 정치인들은 귀담아 듣고 가슴에 새겨 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정치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만불손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험하게 오르내리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과 금력에는 일종의 마력이 있어서 겸손한 사람도 거만하게 만들어 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내서워, 정치의식이 희박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더러 사회성이 없다거나 이기적인 인간이라거나 하여 힐난 공격하지만, 권력 심리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지나치게 정치에 들뜨는 경유 보다는 어느 편인가 하면, 정치에 무관심한 분위기의 경유가 오히려 건전한 정치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권력과 금력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면 클수록 자대(自大)해지고 오만해지는 성격을 지닌다.

 최대의 권력자가 소망을 물었을 때 그늘이 지니 좀 비켜서 달라고 한 철학자의 일화는 지나치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별로 권력에 관심을 갖지않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권력자는 재물에 맥이 빠져 거만을 피울 흥미도 잃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금력을 가진 자라야 어디 하루에 열 끼를 먹고 백 평짜리 이불을 덮고 잘 것이냐는 식으로 대범하게 넘겨 짚는다면 돈 많은 사람도 금은 보화를 번쩍 거려 겨드름을 피울 허영의 멋을 잃고 말 것이 분명한 것이다.

권력의 거만은 그에 대한 박수의 도에 좌우되고, 금력의 거드름은 거기 보내지는 선망의 한숨소리에 정비례 하는 것이므로 일반국민은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의 거리를 두고 평상심(平常心)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주 정치인은 만나야, 소통하고, 그래야 창조의 내일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나주 정치발전의 한 방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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