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음자(나주시 대호동)
얼마전 전국에서 흩어져 사는 세지초등학교 40회 졸업생들이 졸업 40주년의 동창회 모임을 모교가 있는 세지에서 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40년이 지났는데 나를 기억하고 찾아 준 제자가 너무 반가웠습니다.

잊혀진 여인이 아니었다는 것에 나는 행복했습니다.
벌써 쉰을 넘은 제자들이 모인다는데...

아이들이 자라는 세월 동안 나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그들의 아픔도 몰랐고 그들의 기쁜 날에도 함께 웃지 못했던 선생인데. 나를 기억하고 찾아주는구나.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으로 비쳤을까? 아무 생각 없이 쏟아낸 나의 말 때문에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사는 아이들은 없는가.

스물일곱 살의 철없었던 5학년과 6학년의 담임이었던 김넉자(별명) 선생이 일흔이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동창회에 갔는데. 제자들은 정성을 다하여 동창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가르치심을 가슴에 새기며, 가르침에 빗나가지 않는 40회 일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뜻밖의 사랑의 선물과 제자들이 주는 감사패를 받으면서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제자들의 이야기로 나는 아주 행복한 밤을 보냈답니다. 내가 들려준 성경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그 옛날의 성경 이야기, 방학숙제를 하지 않아 매를 맞았다기에 나는 덜컥 겁이 났는데요.(매를 때리시고 울었다는 나를 기억하여 주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지난 교직생활을 돌아다보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1960년대에는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걷었습니다. 교사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여 육성회비를 독려했습니다.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그 때 아이들이 내야 할 육성회비를 내가 내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달마다 생활비를 받았지만 그 월급을 아이들에게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손을 잡아 주었으면 더 훌륭하게 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를 후회하게 합니다.
거친 광야 같은 내 인생의 길목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비바람 때문에 내 삶을 가누기도 힘들었습니다.
아주 몹쓸 병과 가난을 핑계로 참된 스승의 길을 걷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나를 예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네요.

그리고 선생으로 초대해 주었네요.
교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이 부족한 나를 스승으로 기억해 주는 세지초등학교 40회 동창생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우정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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