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게미를 살리는 데는 좋은 젓갈이 들어가야 딱이죠!”

▲나주목사고을시장 미조식품 김희영 사장
김희영 사장 “시어머니와 함께 일군 젓갈사업 대물림 자랑스러워요”

전라도 음식맛 비결은 젓갈, 맛과 인심으로 목사고을시장 자랑 될 터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오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점차 그 모습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오일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도 지방에 기근이 심해 이를 극복하려고 ‘장문(場門)’이라는 향시가 열렸다는 신숙주(申叔舟)의 주장을 오일장의 시초로 본다면, 이는 대체로 15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목포대학교 고석규 교수에 따르면, 영산강이 흐르는 남도에서 최초로 장시(場市)가 섰다고 한다. 중종실록에 1470년(성종1년) 장문(場門)이라는 이름의 시포(市鋪)가 나주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와 무안의 장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었다는 것. 면면히 내려오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설시장이 생기면서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까지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지난 2012년 나주 오일장과 매일시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목사고을시장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라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세월 남도의 물산과 경제, 서민들의 문화와 소통의 근거지였던 시장. 전남타임스와 나주목사고을시장 문화관광사업단(단장 조진상, 동신대 교수)이 공동기획으로, 서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맡아왔던 목사고을시장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젓갈장사 아줌마요? 자랑스럽죠!

“학교에서 학기 초에 가정환경 조사를 하잖아요? 그럴 때 우리 애들이 부모님 직업을 묻는 항목에 뭐라고 써야하냐고 물으면 시장에서 젓갈장사 한다고 쓰기가 참 민망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까 그게 후회가 돼요. 음식의 가장 맛있는 조리를 위해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젓갈인데...”

나주목사고을시장 오일장옥에서 미조식품을 운영하는 김희영(56)사장의 얘기다.

다른 장옥과는 달리 화려한 조명불빛 아래서 곱디고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 김희영 사장을 보고 “앗, 젓갈장사 아줌마가 아닌데? 주인이 어딜 갔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32년째 나주장과 남평장, 송정리장에서 젓갈을 팔아온 베테랑 젓갈장수 아줌마였다.
물론 처음부터 젓갈장수 아줌마였던 것은 아니다. 결혼 후 한 10년 동안은 젓갈장수를 하는 시어머니를 돕는 일이 영 마뜩치 않았다.

시어머니의 뒷전에서 잔심부름이나 도와드리며 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일이었던 소심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젓갈장사를 해서 8남매를 어엿하게 키워내고 둘째며느리인 자신에게 진정한 젓갈의 참맛을 전수해 준 스승이자 창업주라는 생각으로 모시면서 자부심이 생기고 당당하게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작년에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난 김희영 사장의 시어머니 고(故) 정경애 여사는 나주장에서 43년 동안 젓갈을 팔아왔다. 그러다보니 고객들도 그 자녀들과 손녀들에게 대물림 되고, 으레 젓갈을 사려면 단골집을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맛을 만들어 주는 미조식품

그동안 시어머니 곁에서 32년째 장사를 해 온 김희영 사장 역시 젓갈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상의 미각과 후각을 갖게 됐다. 날씨에 따라서, 기후에 따라서 젓갈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손님이 젓갈을 찾으면 어디에 쓸 것인지를 꼭 묻게 된다. 음식에 따라서 궁합이 맞는 젓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단지 인심이 좋아서 찾아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또 에누리를 할 수 있는 것만이 매력은 아닐 것이다.

▲김희영 사장은 손님의 필요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맛의 젓갈을 권하는 친절도 잊지 않는다.

다 조카 같고, 아들 딸 같기 때문에 젓갈 하나를 팔면서도 집안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소식 뜸한 이웃들의 근황을 놓고 수다를 떨고 세상 살아가는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재래시장 상인들이 손님들을 대하는 방법이다. 한 번 왔다 간 손님이 젓갈 맛이 좋아 다시 찾는 경우는 드물다. 그 손님이 젓갈로 맛을 내고자 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서 그 음식맛과 궁합이 맛는 젓갈을 권하는 것 또한 젓갈장수의 덕목이다.

좋은 젓갈은 기본, 맛으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인심으로 마음을 사는 것이 바로 재해시장을 다시 찾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은 김희영 사장은 일찍이 시어머니를 통해서 터득한 경영 노하우다.

전라도 음식에는 게미가 있다?

전라도 음식에는 다른 지역에서 맛 볼 수 없는 '게미'가 있다고들 한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 음식 속에 녹아있는 독특한 맛의 비결을 김희영 사장은 바로 젓갈이라고 말한다.

전라도 별미라고 하는 푹 삭힌 홍어를 보자. 제대로 삭힌 홍어 한 마리에서는 무려 12가지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눈물이 나도록 톡 쏘는 맛부터,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갈 만큼 부드러운 맛까지...
그런데 전라도 음식맛의 특징인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맛’을 의미하는 ‘게미’를 더 하는 데는 젓갈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김희영 사장의 지론이다.

맛깔 나는 황석어나 멸치젓갈을 듬뿍 사용하는 전라도 김치는 다른 지역에서 맛볼 수 없는 감칠맛을 준다는 것.

김희영 사장의 젓갈이야기를 듣는 내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이 생각나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젓갈에서는 어떻게 그런 맛깔스런 게미가 나는 것일까?

젓갈은 어패류의 살·알·창자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을 말한다. 젓갈은 또한 요긴한 밑반찬으로 새우젓·조기젓·밴댕이젓·꼴뚜기젓·멸치젓·연어알젓·명란젓·어리굴젓·조개젓·창난젓·방게젓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특히, 날이 더운 전라도에서는 젓갈을 담는 일은 장, 된장을 담그는 연중행사 이상으로 중요시돼 왔다.

마을부녀회장의 주선으로 동네로 멸치, 황석어를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오는 날은 집집마다 양푼과 대야를 이고 모여들기 엄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주변을 호기심 많은 꼬마들이 빙 에워싸고, 그 위를 쉬파리 떼가 윙윙거리고... 온 동네는 비린내로 진동을 했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곰삭은 젓갈만큼이나 오래 된 젓갈의 역사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젓갈을 먹게 됐을까.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그 연원을 찾아보니 그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비롯됐다.

신문왕(재위 681~691)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으로 다른 식품들과 함께 해류(?類)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시대 초기 유희춘의 ‘미암일기(眉巖日記)’에서 젓갈과 식해의 구체적인 명칭이 나타나는데, 게, 백하, 가리마, 전복 등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중기로 넘어오면 젓갈에 사용된 어패류의 종류가 무척 다양해진다.

저술한 ‘음식디미방’이나 유중림이 지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따르면 청어, 연어, 새우, 숭어, 조기, 밴댕이 등을 원료로 하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집에서 손수 젓갈을 담가 먹을 리 만무하지만 좋은 젓갈을 사는 것만으로도 식탁의 행복은 좌우된다.

나주목사고을시장 오일장옥에 세련되고 멋진 외모의 젓갈장수 아줌마, 미조식품 김희영 사장을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나주인들의 밥상이 왠지 행복해 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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