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내아 대청마루에 앉아 학봉 김성일 할아버지의 혼(魂) 느껴”

▲14대 선조인 학봉 김성일 목사가 묵었던 목사내아에 후손인 자신이 서 있다는 것에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느낌”이라는 감회를 밝히는 김시호 한전 영업본부장
나주 원도심 신지중모델 시범구축사업 책임 맡은 김시호 영업본부장 감회 밝혀

430년 전 나주목사 지낸 학봉 김성일이 14대 선조 “하늘이 맺어준 인연 실감”

“지난해 11월 한전 본사 이전과 함께 나주에 내려오면서 나주목사를 지낸 14대 할아버지의 흔적을 꼭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금성관을 둘러본 뒤 목사내아에 왔는데 ‘나주목사 김성일방’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 앞에 호(號)라도 붙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지난 24일 오후 나주목사내아 금학헌의 접견실에서 만난 한전 김시호 영업본부장의 솔직한 얘기다.
지난 9일 나주시청 이화실에서 열린 나주시와 한국전력공사의 ‘나주 신 지중모델 시범구축사업’ 공동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밝혀진 김시호 본부장과 나주의 특별한 인연.

당시 조환익 한전 사장이 “한전에서 이번 사업을 총괄지휘하는 김시호 영업본부장의 14대 할아버지가 나주 목사를 지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과거 할아버지가 나주에 남긴 유업을 후손이 이어서 하는 아주 뜻 깊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혀 관심을 촉발시켰다.

과연 그 선조가 누굴 것인가 탐문한 끝에 밝혀진 주인공은 놀랍게도 학봉 김성일 목사였다.

430년 전 할아버지의 숨결 느끼며

고려 성종 때부터 조선 말기까지 전라남도 일원을 관할하던 나주목은 지금의 도청소재지에 해당하는 관청으로, 1000여년의 역사 속에 390여명의 목사가 재임했다.

그 중 학봉 김성일 목사는 1583년 8월부터 1586년 10월까지 나주목을 다스렸다. 

조선시대 세기의 재판으로 알려진 ‘나주노비소송’과 관련해 왕이 “그대가 밝게 다스리며 송사 판결에 흔들림이 없으니,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은 매우 꺼리나 백성은 편해졌다”고 칭송하며 상을 내리기도 했다는 일화, 성격이 곧고 강직해서 왕명을 띠고 파견된 순무어사인 김여물이 술이 취한 상태로 관아의 문을 두드리자 이를 꾸짖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일화 등이 전해지고 있다.

한전 이전 업무가 마무리되면서 혼자 승용차를 타고 생면부지의 땅 나주로 내려오는 길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는 김시호 본부장.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가 나주목사를 제수 받아 한양에서 나주로 꼬박 한달 동안 걸어서 내려왔을 길이라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고.

할아버지의 숨결을 따라 목사내아 대청마루에 앉는 순간 430년 전 할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자신이 앉아있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주성 2차전투에서 김천일과 김성일
 
김성일 나주목사는 재임 중에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인 대곡서원(현재 노안면 소재 경현서원)을 세워서 퇴계학파와 나주 유림들을 연계해 유학발전에 기여했고, 조선시대 나주읍성권의 3대 사장(射場, 활쏘는 곳)이었던 동문안 사장터에 인덕지라는 연못을 건설하기도 했다.

특히, 김성일 목사는 나주목 관아 정문인 정수루에 북을 설치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고 소원을 들어주는 선정을 베푼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나주목사를 사임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양성에 정진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정으로부터 경남초유사를 제수 받아 전국 최초로 의병궐기를 촉구하는 ‘진주격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진주성 1차 전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과 병사들을 규합해 진주성대첩을 진두지휘했으며, 진주성 2차 전투에서는 나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건너간 김천일 의병장 등과 왜적에 대항해 싸우다 과로로 순절한 인연을 갖고 있다.

경북 안동에 있는 김성일 목사의 종택에는 기념관이 따로 지어져 나주목사 재임 당시 가족들에게 보낸 언문편지와 노비소송 판결문, 당시 나주사람들과 인연을 기술한 문서 등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나주시는 지난 2008년 나주목사의 관사였던 목사내아를 한옥체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조한 ‘금학헌’의 내실 두 칸을 ‘김성일 방’ 으로 이름 붙여 김성일 목사의 선정을 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역일각에서는 김성일 목사가 나주나씨 등 유림들의 뜻을 존중해 조정에 직접 상소해서 얻어낸 전라도 최초의 사액서원인 경현서원을 본래의 자리인 경현동에 재건하는 방안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현재 나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한국학호남진흥원 유치가 실현될 경우 그 적지가 경현동과 경현서원 복원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원도심 지중화사업으로 역사문화도시 ‘우뚝’

김 본부장이 책임을 맡아 추진하는 ‘나주 신 지중모델 시범구축’은 총 6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서 금성관 주변과 중앙로에 내년 10월까지 첨단공법으로 4가지 지중화모델의 특화거리 3.9km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으로 나주읍성 4대문 복원, 나주목관아·향교주변사업 등 원도심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도시경관 개선에 획기적인 기여와 함께 원도심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본부장은 “천년 목사고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주에서 현대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시각적으로 장애가 되고 있는 전신주와 배전설비 등을 지중화해서 경관을 살리는 일을 후손이 한다는 것에 조상과의 인연을 떠올린다”면서 “목사고을로서의 과거 천년과 에너지밸리로 미래 천년을 꿈꾸는 한전의 상생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 김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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