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준
(수필가, 목포시 거주)
우리 집 3층 옥상에 올라가면 목포대학교 송림 캠퍼스가 집 안마당처럼 가까이 바라다 보인다. 말만 캠퍼스이지 대학이 청계로 이사 간 다음에는 대학생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휑뎅그렁하니 퍽이나 쓸쓸하다.

요즘은 제 철 만난 뻐꾸기가 캠퍼스 뒤쪽 양을산 솔밭에서 뻐꾹, 뻐꾹, 영롱한 목소리를 뽐내고, 밤이면 소쩍새가 소쩍, 소쩍, 음산하고 구슬프게 울 따름이다.

그래도 나는 캠퍼스의 적막감이 마음에 든다.

나는 어렸을 적 삼대할머니가 사시던 나주 금성산 산가를 늘 그리워한다.
대자연의 품에 폭삭 안긴 산중턱 정남향 초가집으로 쏟아지던 햇빛은 얼마나 안온하고 다사롭고 평안했던가.

그 능선 위로 피어오르던 뭉게구름은 얼마나 눈부시고 황홀했던가. 희미한 별빛을 거느리고 산봉우리 위에 걸린 초승달은 얼마나 요염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쫑쫑쫑쫑쫑쫑 쫑쫑쫑쫑쫑쫑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골짜기를 울리던 밤새의 지저귐은 또 얼마나 고혹적이고 환상적이었던가.

그 산가에는 호롱불이 희미하게 흐늘거리고 있었다. 전기도 없고 라디오나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도 없었다. 속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속세의 풍문은 꿈결처럼 희미하고 세간의 소식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3층 옥상 의자에 걸터앉아 고즈넉한 캠퍼스를 바라보노라면 옛날의 산가가 퍼뜩 떠올라 그리움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여기는 절간이 아니다. 날마다 메르스 환자가 급증한다는 소식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 전염병에도 정부의 대처가 너무 안이하고 굼뜨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전교조 전남지부에 근무하는 식구들의 초청을 받아 월선리 예술인 마을에 사는 지부 간사의 집으로 놀러갔다. 대지가 수백 평이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한쪽에 번듯한 정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러웠다. 널찍한 정자에서 여남은 명 모여 술판이 벌어졌다.

안주는 그 날 아침에 약산에서 배달되었다는 ‘비단가리비조개’였다.

보통 가리비조개는 넓적한 껍질만 요란했지 막상 속을 쪼개보면 기대보다 얄팍하고 볼품없는 속살에 실망하기 마련인데 비단가리비는 속살이 두껍고 실팍해서 오지고 흐뭇하기 짝이 없었다.

비단가리비는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껍질 속에서는 작은 게가 산 채로 기어 다녔다. 나중에 어느 선생한테 물어보니 그건 조개가 게를 먹은 것이 아니고 조개와 게가 공생 관계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비단가리비를 숯불에 구워먹었지만 날것을 좋아하는 나는 구운 조개를 입에 대지도 않고 열 개 이상 날로 까먹으면서 소주를 들이켰다.

즘 요런저런 일로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한 지부장이 앙다문 조개입술을 칼로 비틀어 날렵하게 속살을 발라주었다. 살아 있는 조갯살 맛이 비릿하면서도 꿈틀꿈틀 쫀득쫀득 얼마나 환상적인지 안 먹어본 사람은 알 도리가 없다.

집 주인은 또 그 집에 핀 꽃을 꺾었다면서 모란꽃 한 송이와 작은 꽃 두어 송이를 투명 비닐로 돌돌 말아 스승의 날 기념이라면서 퇴직한 나와 김종승 선생한데 선사했다. 내가 받아본 꽃다발 중에서 가장 뜻 깊은 선물이었다.

그 집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과 채소가 자라고 있었는데 나 같은 게으름뱅이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수백 평이나 되는 마당과 텃밭을 가꾸자면 날마다 잡초와 씨름하면서 진땀을 흘려야하는데 엔간한 부지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비단가리비에 뒤이어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연기가 살랑살랑 흩날리면서 술상 주위로는 슬금슬금 웃음소리가 높아 가는데 나는 얼큰히 달아오른 취기 때문인지 그 새의 본명이 무엇이라고 하는 대목을 건성으로 놓쳐버렸다.

마 예술인 마을의 뒷산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모양인데, 그 새의 이름은 거시기머시기인데, 그 울음소리가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린다는 얘기였다.

술상 주위로 웃음소리가 왁자그르르 낭자하게 쏟아졌다. 무슨 그런 소리가 해괴망측한 소리가 있을라디야, 나는 그저 슬쩍 웃다가 말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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