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준
(수필가, 목포시 거주)
<지난호에 이어서> 며칠 후 우리 집 3층 옥상에 앉아 있는데 건너편 양을산 비탈에서 ‘뻐꾹 뻐꾹’하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섞여 ‘홀딱 벗고, 홀딱 벗고’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서 그런지 영락없이 ‘홀딱 벗고’였다.

야, 거 참 희한한 소리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저렇게 울었을 텐데 왜 나는 여태껏 몰랐지. 거 참 포복절도할 노릇이네.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계이름을 더듬어보았다.

영락없이 ‘라솔솔미’였다. ‘홀딱 벗고 - 라솔솔미 - 홀딱 벗고 - 라솔솔미’

새가 말을 할리야 만무하지만 정말로 그 새가 ‘홀딱 벗고’라고 운다면 무슨 뜻일까? 나는 옥상 의자에 앉아 담배 연기를 흩날리면서 ‘홀딱 벗고’의 의미를 나름대로 골똘히 더듬어보았다.

설마 홀딱 벗고 다니라고 사람들을 충동질하는 뜻은 아닐 테고....... 그러다가 멋진 교훈을 찾아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몸뚱이를 옷으로 가리고 다니니까 아무도 자기 속살을 모를 것이라고 안심하지만 사실은 속살뿐이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낱낱이 까발리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의 몸뚱이는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생각이나 행실까지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너른 세상에서 어느 한 귀퉁이쯤 자기 몸과 마음을 숨길 곳이 없겠느냐고 자만할지 모르지만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하늘의 그물은 촘촘하고 엄정하기 이를 데 없어서 언제 어느 그물코에 걸려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

그러니까 요컨대 사람들은 내남없이 벌거벗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옷을 걸치고 침침한 그늘에 숨어 안심하고 지낸다. 거시기머시기 새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웃는 뜻에서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고 놀리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일산 사는 윤 선생한데 적어 보냈더니 얼마 후 답장이 왔다. 그 새 이름이 ‘까만등뻐꾸기’라는 거였다.

나만 여태껏 몰랐지 많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까만등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홀딱 벗고’로 들린다는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국문학박사이자 소설가이자 시인인 윤 선생은 인터넷에서 찾았다면서 ‘홀딱 벗고’ 시도 한 편 소개했다.
나는 그 시를 감상하면서 야한 동영상을 볼 때처럼 얼굴을 붉혔다.

이건 너무나 직설적이고 너무나 외설적이지 아니한가.

인터넷에 ‘홀딱 벗고’를 쳐봤더니 일명 ‘홀딱’ 새로도 불린다는 검은등뻐꾸기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이도 호화찬란하게 실려 있었다. 글뿐 아니라 사진도 보이고 동영상도 나와서 울음소리까지 들어볼 수 있는데 양을산 골짜기에서 들리는 소리하고 빼다 박듯이 똑같았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렇게 ‘홀딱 벗고’라는 별명이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 희희낙락했다는데 나만 새까맣게 모르고 70년 동안이나 무식쟁이로 살아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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