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DMZ, 스토리로 무장하다....포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비무장지대DMZ는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어귀의 교동도 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 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영호리까지 이르는 155마일(약250Km)의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2Km,약3억평의 완충지대를 뜻한다. 이는 1953년7월27일‘한국전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 경계선의 남쪽은 남방한계선,북쪽은 북방한계선으로 각각 군사분계선에서 2Km씩 떨어져 있다. 이제 1953년7월23일 총성과 포성이 멈추면서 모든 것이 함께 멈춰 버린 비무장지대 DMZ가 스토리로 새롭게 무장을 시작한다.‘웃으면서 들어갔다’ 가 ‘나올 때는 100만 명의 귀신이 들려 시시콜콜한 것으로 싸우면서 나온다’는 비무장지대...
한반도 분단의 아픔과 함께‘왕조들의 탄생’,‘궁예도성’,‘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박수근 화백의 그림항아리’,‘신혼 여행길에서 오른 마릴린먼로의 위문공연’,등 포화 속에 묻힌 역사와 문화의 진실 된 이야기를 꺼내본다.<편집자 주>

7월의 철원평야는 푸르고 싱그런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북한 노동당사
강원도내 제1의 평야로 현무암이 풍화된 비옥한 토양은 농사에 적합하여 곡창지대를 이루고 예로부터 철원 오대쌀로 유명하다.“한번 짝을 맺으면 부부가 평생해로하고 늘 가족 단위로 움직이며 순 우리말로 뚜루루루- 라고 울어서 두루미라 부르게 된 천연기념물 두루미”는 이곳 철원 평야가 겨울 안식처다.

돌을 던져 나는 장면을 촬영하러 온 사진작가들은 두루미가 가장 싫어하고, 먹이를 주며 철새들과 교감하면서 살아가는 민통선 주민들은 등록된 사진작가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새들 먹이를 구입해 준다고 한다.
이곳평야에선 보이지 않는 “휴전선을 가로질러 민족분단의 탄식이 흐르는 강”

1978년1월21일 큰 여울 한탄강에서 미2사단 헬기부대원 그랙보엔 이 애인 이상미와 데이트 하던 중에 돌맹이 하나를 발견하면서 한때 전 세계 고고학자들의 관심이 쏠린 곳 이기도하다. 

애인 이상미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짱돌이다” 고 했지만 미군병사는 한반도에선 나올 수 없는 “최초 인류가 쓰던 주먹도끼”다 며 고집하면서 구석기 유물로 까지 거론이 된다.

어느 일본고고학자 는  돌맹이 하나를  몰래 숨겨뒀다가 세상에 내놓으면서 “세계최초의 주먹도끼”라고 세

△노동당사 내부
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실을 알게 된 비서의 폭로로 명예를 잃은 고고학자는 활복 자살을 하게 됐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이야기가 흐르는 한탄강 위에 새워진 “김일성이 시작하여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는 승일교<사진> 가있다. 승일교는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를 잇는 한탄강의 다리로 지방도 제463호선에 속해 있으며 교량의 노후화로 현재 차량은 1999년 개통된 한탄대교를 이용하고 있다.

정설로는 한국 전쟁 중 큰 공을 새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1920년~?)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 라고 지어졌다 는 것이며 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도 이를 소개하고 있다.

사회주의건축과 자본주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두 다리를 지나 ‘고물장수들이 자주 간다.’ 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월정리역에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졌던 철의 삼각지에 위치한 월정리 역의 멈춰진 기차는 한국전쟁의 처참했던 상황과 분단의 한을 실감케 한다.

“키 작은 사람이 가장 신난다는 곳 제 2땅굴”

△제2땅굴 내부
군사분계선 남쪽 1.1Km까지 파내려온 높이2m의 아치형 제2땅굴은 1972년 7.4남북공동 성명이 있은 후 국민들이 통일의 꿈에 빠져 있을 때 6사단이 전방 북한 지역의 활동을 중점 관측하면서 발견한 곳으로 수색 작전 때 김호영 중사와 7명의 대원이 북한군이 차단벽에 설치해놓은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곳이다.

해방후 무시무시한 악명을 떨쳤던 북한노동당사<사진>또한 앙상한 뼈대만 남긴체 당시의 아픈 이야기를 포탄 자국 속에 숨기고 있는듯하다.

북한이 공산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주민들을 통재하기 위해 건립한 노동당사는 비밀유지를 위해 건물 내부 작업 시 공산당원만 동원했으며 공산치하 5년 동안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인사들의 채포, 고문, 학살 등 잔혹한 만행을 자행한 곳이다.

국도3호선을 지나던 미군 탱크 한 대가 노동당사로 커브를 틀어 올라가 당사를 향해 포탄을 쏴 뒤 벽이 허물어져 있고 당사계단에 지금도 탱크 바퀴자국이 그대로 있다.  건물 뒤 반공호 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되었다.

‘기억속 공간으로 남아있는 구철원’은 이렇듯 많은 이야기를 남긴 체 마치 그 옛날 정철이 북관정 에 올라 천고흥망의 성쇠를 읊었던 궁예의 폐궁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철원의 천년 속에는 궁예의 사민도시와 해방공간의 수부도시, 냉전시대의 정책 이주도시가 다층을 이루고 있다.

북한 땅 저 멀리 오성산이 보이고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도읍지이며 고구려인의 기상과 유서가 깊은 옛 철원이 보이는 휴전선 155마일 중 정 중앙에 위치한 승리 전망대는 북한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북한군의 이동 모습은 물론 경원선철도, 아침리 마을 등 남북분단의 현장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승일교
전망대를 내려와 옛 철원을 지나면 화천군 상서면 사방거리에 이른다.

사방거리는 휴전이후 이곳에서 군복무를 마친 전역장병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이 거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은 이곳 인구가 1000여 명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주둔 병력만 1개 사단 병력을 훨씬 넘어 민 군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민군 상생협력지역사업이 필요한 지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방거리를 지나 화천군의 북한강 최상류에 외로이 꺼먹다리가 있다.

꺼먹다리는 일제가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 가동을 위해 검은 골탕으로 지은 다리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주요시설 확보를 위한 최대 거점 격전지였던 파로호와 화천댐, 지금은 DMZ로 변한 백암산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다.

△화천꺼먹다리

꺼먹다리 주변에 있는 도령과의 사랑에 얽힌 슬픈 전설의 터 구만리‘처녀고개’에 대한 이야기다.

‘구만리 딴 산’에 살던 총각이 중국으로 건너가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온 뒤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자 중국에서 알게 된 처녀가 찾아와 고개에서 길을 묻자 구만리만 가면 된다는 말에 지금까지 온 길이 구만리인데 또 구만리를 가야 된다는 생각에 그만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는 연합군이 중공군 3개 군을 완전히 격멸하여 파로호에 수장시켰다고 전해지며 수만의 생명이 파로호와 화천강에 잠들어 있는 슬픈 사연을 품고 있는 화천댐 수력발전소는 수시로 북한과 남한으로 소유권이 바뀌었고 당시 남한의 총 발전 용량이 20만kw일때 5만kw의발전 용량을 갖춘 화천댐을 서로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금강산에서 때어다 옮겨 놓아 아직도 금강산에 때어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딴산의 처녀고개를 넘어 물이 흐르지 않는 북한강 상류 을 지나  찾아 간 우리 현대사의 아이러니한 평화의댐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전두환 정부때 추진하여 노태우 정부때 완공한 평화의댐 을 강력히 반대했던 김대중 정부는 다시 증축공사를 추진하게 되었고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현제 까지 대규모 증축공사를 계속 하고 있는 현장은 아무도 모를 아이러니 한 공사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가져온 탄피를 모아 만들었다는 평화의종소리를 들으며 통일을 염원하며 올라간 곳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군견의 동상이 있는 제4땅굴

땅굴을 수색 하던 중 폭발물이 터져 산화한 군견은 독일산 쉐퍼드로 이름은 헌트, 소위로 추서돼 계급까지 있는 충견, 헌트 소위로 인해 십여명의 우리 군인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땅굴 내부에 화강암층을 통해 흘러내리는 비무장지대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는 사회에서 맛 볼 수 없는 최고의 생수로 알려져 오는 사람마다 담아가는 바람에 지금은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마지막 이야기가 숨겨진 을지전망대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금강산 비로봉과 내금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발 1,049m의 최전방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는 양구군에서 7km의 군 작전 도로를 포장공사 해준 대신 일반관광객들에게 개방 해주는 조건으로 공사를 완료하여 1998년2월부터 당일 출입이 허용된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 다 보이는 펀치볼은 사방이 화채그릇 모양처럼 삐쭉 삐쭉 솟아 있고 안으로는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패인 자국처럼 보이는 곳으로 북한에서 봤을 때 잘사는 마을로 보이기 위한 선전마을 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 농협 돈 때어 먹기로 유명했던 곳 이었다고 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운봉에 선녀폭포가 있는데 그곳에서 북한 여성들이 목욕을 하면서 남한 군인들을 유혹했으며 반대로 남쪽 가칠봉 에 수영장을 만들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벌여 북한군을 유혹했다는 을지부대 21사단이 지어낸 이야기와 산 너머 저쪽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총성 없는 전선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에 그림항아리 이야기는 한반도 분단의 상처와 숨겨진 문화의 가치를 찾아 나서게 해주는 단 하나뿐인 공간 DMZ가 들려주는 소중한 평화와 생명의 소리 즉 이야기다./서송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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