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통의 천연섬유 ‘한산모시’ 유명세와 달리 모시 짜기 전통 잇기 쉽지 않아

성공하는 마을에는 그들만의 전략이 있다.’최근 지역공동체 회복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사업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마을 주민 스스로 적극적인 공동체의식을 발휘해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주민참여체계를 구축해 지속 가능하고 발전 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데 힘과 지혜를 모으고 있다.주민들의 닫힌 생활문화공간을 함께 나누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주민에게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방문객에게는 다시 찾고 싶은 친근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공통된 관심사다.이는 최근 나주에서 일고 있는 도시재생의 뜨거운 열망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그렇다면 잘 사는 마을에는 과연 어떤 전략이 숨어 있을까? 이번호부터는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전통 특산품의 미래’ 현장탐방연수에서 그 단서를 찾아본다.전국의 어느 산하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시풀, 그 모시풀이 어느 지역에서도 추석에 송편을 해먹는 재료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온 마을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2011년 11월 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유산 한산모시 짜기와 줄타기, 택견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산모시는 백제시대부터 전승돼 온 천연섬유 옷감으로 여름철 옷감과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예소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연섬유로서 1500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한산모시짜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혼이 깃들어 있으며 인고의 세월이 숨어있다. 한산세모시가 탄생하기까지는 ‘태모시 만들기-모시째기-모시삼기-모시날기-모시매기-모시짜기’의 여러 공정을 거치며, 이 과정들이 분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시섬유의 비중은 1.48g 정도로 면보다 무겁지만, 흡수력은 면보다 큰 장점이 있으며, 내구성과 열전도율이 크고 땀의 흡수 및 발산이 우수해 여름철 청량소재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가공을 하지 않아도 희고 태양광에 노출돼도 색 변화가 없는 점, 광택과 곰팡이류에 대한 안전성 부분에서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 일 년에 세 차례 모시풀을 베어내 이를 원료로 이어지는 공정은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업으로 오랜 세월 동안 기능해 왔으며 지금도 산업으로서 한산모시축제와 더불어 전승되고 있다. 탄생된 모시베는 오일장에 내놓으면서 지역 공동체내에서 커다란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서천군은 이같은 한산모시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올해로 26년 째 한산모시문화제를 열고 있다. 한산모시문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화관광체육부 우수관광축제로 선정됐다. 지난 6월 ‘100일간의 기도 1500년의 사랑’이란 주제로 열리는 올해 한산모시문화제에서는 모시짜기 전 과정을 시연하며 모시에 대한 자부심을 드높이고 있다.한산모시 짜기 명인 방연옥 여사한산모시체험관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산모시공방.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 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선생이 베틀에 앉아 부지런히 손발을 놀리자 ‘탁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씨실, 날실이 교차하면서 옷감을 만들어 나간다.모시짜기 명인이 일을 하신다 하니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줌마들 집에서 입는 평상복 차림이다. 보도용 사진으로 영 마땅치 않아 기자들끼리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선생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 귀한 모시옷을 입고 어찌 일을 하냐는 것. 워낙 귀한 옷감이라서 자투리 조각 하나 버리는 일 없고, 유행이 지났다고, 오래 입었다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는 것이다.방연옥 여사는 어려서는 모시 일을 하지 않았단다. 모시 짜는 여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는 친정어머니의 염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마흔을 내다보는 나이에 한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 집에 들러 모시 짜는 것을 구경하고 가끔 바쁜 일손을 거들어준 것이 인연이 돼 전수자가 되었다.모시는 조금이라도 건조하면 쉽게 끊어지므로 언제나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곳에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가습기가 있어 일하기 훨씬 수월하지만 예전에는 더운 여름날에 움집이나 부엌이나 마루 아래 땅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했다고 하니 절로 손사래가 쳐진다.완성된 모시 옷감은 고운 미색을 띤다. 취향에 따라 새하얀 모시로 표백하거나 치자, 홍화, 쪽 등으로 염색해서 옷을 지어 입기도 한다. 모시 한 필이면 치마저고리, 여인네 전통 한복 한 벌에 조끼 또는 남성용 남방 하나를 짤 수 있다고 한다.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는 동안에도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북새통을 이루고, 하루 몇 시간 일하나, 보수는 얼마나 되느냐, 요새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있느냐... 묻는 말에도 귀찮다는 기색 하나 없이 일일이 말대접 하면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일을 하고도 문화재 전승보조금 명목으로 한 달에 100만원 약간 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니, 한산모시의 유명세와는 달리 한산모시 짜기 명인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어 보인다.‘먹는 모시’에 주력 달고개모시마을충남 서천군 화양면 월산리 일명 달고개모시마을, 전체 쉰여덟 가구에 백마흔 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모시송편 판매와 송편 빚기 체험프로그램으로 활기찬 마을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서천군 일대는 이미 모시 옷감을 생산하는 농가가 많았다. 또 모시의 소비 풍속도가 바뀌면서 점차 ‘입는 모시’에서 ‘먹는 모시’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달고개모시마을은 ‘먹는 모시’에 집중했고, 모시송편 체험과 판매사업을 벌이면서 연간 3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처음에는 전통문화 체험관광을 주제로 잡았다. 모시송편 생산은 영농조합 결성 3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노령화된 인력으로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체험프로그램보다 송편을 생산·판매에 집중 달고개모시마을은 마을 단위 소득사업을 추진하자는 뜻을 모은 후, 공동으로 농협 대출을 받아 경관 조성사업을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 서천군 어메니티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듬해 2006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선정하는 농촌테마마을로 지정받았다. 이때 총 3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전통테마관을 짓고 모시체험 마을조성에 나섰다. 2006년 10월에는 주민 30명이 동참해 달고개모시마을 영농조합법인의 간판을 올렸다.초기에는 모시를 이용한 떡과 차, 두부, 부침개 등의 먹을거리 만 들기와 함께 모시 짜기, 한과 만들기, 소곡주 빚기, 메주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기에 텃밭 가꾸기 같은 농촌체험과 생태체험을 접목하고 민박까지 도입하면서 체류형 체험마을을 조성했던 것.그런데 체험 수요가 일정치 않은 데다 노령화된 마을 인력으로는 프로그램 운영에 한계를 느끼게 됐다고. 그러던 차에 서천군의 모시활성화사업을 통해 모시송편 생산을 위한 기계(2500만 원)를 지원 받게 되었다.주민 7명이 자원해 모시송편사업을 벌였지만, 초기에는 송편 빚는 노하우가 없어서 맛도 한결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판매가 부진해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다. 달고개모시마을은 각종 지원을 받아 어렵게 일군 사업 기반을 살리지 못한 채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2008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에 7명만 참여하고 있던 모시송편사업을 마을단위 사업으로 전환했다. 또 예비 사회적기업으로서 2년간 인건비 지원을 받으면서 안정권에 들어설 수 있었다.송편 만들기 소득 연간 3억원 달고개모시마을은 2009년 8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2010년 1억 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3억 원을 돌파했다.월 평균 40만~50만 원의 소득을 올려 송편판매 수익보다는 송편 만들기 작업에 참여하는 인건비를 통한 소득창출효과가 더 크다. 기계로 하면 더 빨리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송편은 손으로 빚어야 하니까 일자리 나누기에 적격인 셈. 사업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영농조합에 참여하는 회원농가도 늘어났다. 현재는 마을 전체 55가구를 회원으로 하고 있다. 작업은 여성 인력에 한해 한 가정에서 한 사람씩 인원을 선정, 총 42명이 교대로 순환 근무한다. 달고개 모시송편은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 내 특산물 코너에 60% 정도를 납품하고, 서천군 내 홍보관과 생태공원 등 지역 특화 매장에 주로 공급한다. 전화나 인터넷 주문도 받고 있다.명절에는 거의 매일 작업을 하고, 평시에도 주 2회 정도 송편 빚는 작업을 한다. 작업은 순번제로 돌아가며 참여하기 때문에 회원들 간에 차등이 없다. 달고개모시마을을 이끌고 있는 양만규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모시 심고, 거두고, 삶고, 씻고, 온갖 잔일 하면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데도 소득은 늘 빚에 쪼들리는 식이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마을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송편 만들기 마을기업으로 큰돈은 아니어도 꾸준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마을공동의 부업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달고개모시마을 성공포인트주민친화가 기본이다. 달고개모시마을은 매월 합동생일잔치를 열고, 추석과 설, 정월대보름 등의 명절이면 마을잔치를 함께 연다. 그 결과 주민 모두가 한 가족 같은 우애를 다질 수 있었다. 구체적인 사업형태가 결정되기도 전 마을 경관조성에 나섰을 때도 모두 합심해 1000만 원을 대출 받 았고, 그 투자가 밑거름이 돼 지금의 모태를 만들 수 있었다.두 번 째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운영한다. 2012년도의 지원을 받아 소득창출사업장을 건립하게 되면서 1억 원의 자부담금 마련을 위해 조합원의 형편에 따라 30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출자를 받았다. 하지만 연매출이 3억 원을 넘어선 2014년, 차등 납부한 출자금을 반환해주고 전 조합원이 30만 원으로 출자금을 평준화했다. 작업도 순번제로 배치해 균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그리고 마지막, 최고품질의 제품을 만든다. 송편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는 직접 재배한 쌀과 모시, 동부콩을 사용한다. 또 모시 함량이 40%로 높아 색이 진하고 향도 짙다. 좋은 재료를 쓰는 만큼 최상의 맛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식품을 만드는 일인 만큼 위생도 제1의 규율로 삼고 있 다. ‘맛 없으면 이모 떡도 안 사 먹는다’는 요즘 세태에 품질이 좋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 김양순 기자 jntimes@jn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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